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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박주택, 「국경」 (낭송 박주택)



잠그면 바로 벽이 되는 문.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는 문. 드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단하기 위해 있는 문. 사람들은 바로 그 문을 닮았군요. 그래서 벽을 맞댄 이웃과의 사이가 ‘국경’만큼 멀어지게 이르렀습니다.
문이 벽이 되면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기도 하겠지만 문 안에 있는 사람도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아이디 속에서 익명이 되어 병적으로 소리치는 것도 제 문에 제가 갇혀 숨이 막히니까 마음껏 숨 쉬고 싶어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람의 마음은 그 문처럼 생겼을 겁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김영승, 「반성 743」)

- 2010.12.06   문학집배원  김기택





박주택, 「국경」








이웃집은 그래서 가까운데

벽을 맞대고 체온으로 덮혀온 것인데
어릴 적 보고 그제 보니 여고생이란다
눈 둘 곳 없는 엘리베이터만큼 인사 없는 곳
701호, 702호, 703호 사이 국경
벽은 자라 공중에 이르고 가끔 들리는 소리만이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벽은 무엇으로 굳었는가?
왜 모든 것은 문 하나에 갇히는가?
 
문을 닮은 얼굴들 엘리베이터에 서 있다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꽉 붙잡고는 굳게 서 있다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큰 일이나 되는 듯
더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쏘아본다
엘리베이터 배가 열리자마자
국경에 사는 사람들
확 거리로 퍼진다




시·낭송/ 박주택
-195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꿈의 이동건축』『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시간의 동공』 등이 있음.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출전/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

음악/ 권재욱

애니메이션/ 이지오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업 안내와 <문학집배원>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letter.munjang.or.kr)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