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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프리모 레비, 「옛 길들」 중에서 (낭송 박경찬, 김근)



절박하게 굶주린 사람에게 생선을 선물한 게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요. 체사레가 로마의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타고난 상인이라서요? 나치 수용소에서 풀려나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의 한 마을에 수용된 체사레, 그 마을의 시장에 자리까지 확보하고 물건을 사고팔지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물을 주입해 무게를 불린 생선을 팔러 나간 체사레. 그가 걸려든 것은 소련군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장사꾼인 그에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지요. 이익을 남기는 게 본분인 장사꾼으로 하여금 이득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게 만든 무엇. 이 일이 체사레의 마음에 어떤 자취를 남겼을지 궁금해집니다.

- 2010.12.23  문학집배원  이혜경




프리모 레비, 「옛 길들」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체사레는 얼굴이 새카맣게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수중에는 생선도 없고 돈도 없고 다른 물건들도 없었다. “나, 걸렸어.” 이틀 동안 그에게 말을 걸 도리가 없었다. 그는 고슴도치처럼 털을 곤두세우고 몸을 웅크린 채 짚더미 요 위에 누워 있었고 식사 때에만 내려왔다. 평상시와는 다른 무슨 일이 그에게 생긴 것이다.

나중에, 후덥지근한 날씨의 기나긴 어느 저녁에 그는 나에게, 만약에 알려지면 자신의 사업적 명성에 손상이 갈 것이므로 다른 데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그 일을 말해주었다. 사실인즉, 처음에 사람들을 믿게 만들려고 애썼던 이야기처럼 잔혹스러운 러시아 군인이 포악하게 그에게서 생선을 잡아챈 것이 아니었다. 진실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생선을 선물했다고, 체사레는 부끄러움에 가득 차서 내게 고백했다.
그는 마을로 갔었다. 이전에 이미 수법을 써먹은 고객들을 피하기 위해 주도로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신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을 택했다. 수백 미터를 나아간 뒤 그는 조그만 외딴집 한 채를, 아니 플레이트와 벽돌을 아무렇게나 쌓아올려 만든 바라크(막사) 하나를 보았다. 밖에는 검은 옷을 입은 마른 여자가 있었고 문지방에는 창백한 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체사레는 다가가서 여자에게 생선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생선을 물론 원하지만, 그 대신 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자신과 아이들이 이틀 전부터 굶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또한 체사레를 바라크 안으로 들어오게 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개집 안처럼 짚으로 된 거적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너무나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체사레는 생선을 바닥에 던져주고 부끄러운 나머지 도둑처럼 도망쳤다.



작가/ 프리모 레비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으며, 유대계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제3수용소에서 노예의 삶보다 못한 나날을 지냈음.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토리노로 돌아왔고 1977년까지 니스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작품활동 시작. 1947년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 『휴전』『주기율표』『멍키스패너』『지금 아니면 언제?』『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이 있음. 스트레가 상, 비아레조 상, 캄피엘로 상 등을 수상함.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함.

 

낭독/ 박경찬 - 배우. <밑바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등 출연.
         김근 - 시인.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등이 있음.


출전/『휴전』(돌베개)

음악/ 자닌토

애니메이션/ 송승리

프로듀서/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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