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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함민복, 「원(圓)을 태우며」 낭송 김근 |


나무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는 불에 타면서 음반처럼 삶의 기억을 하나하나 재생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푸른 잎과 꽃의 기억을 연기에 담아 풀어버리고, 새소리와 달빛도 다 토해내고, 강렬한 햇빛과 독한 눈비바람도 계절에게 돌려줍니다.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다시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순환과정이 ‘원’이죠. 자연에서 빌린 삶을 그 원에 담았다가 남김없이 되돌려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활활 타는 통나무 곁에서 불을 쬐면서도 시인은 나무에 새겨진 그 '원'을 다비(茶毘)시키고 있었군요.
 
한 해가 저뭅니다. 묵은 나이테를 따라 돌고 있는 아픈 기억은 다 풀어버리고, 새해의 나이테에는 새로운 활력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2010.12.27 문학집배원 김기택





함민복, 「원(圓)을 태우며」







불타는 나무토막이
불꽃으로 
푸르던 시절 제 모습을 그려 본다
불꽃으로
뿌리내렸던 산세를 떠올려 본다
 
살며 쪼였던 태양빛을 토하며
조밀한 음반
기억의 춤 나이테를 푼다
 
새의 날갯짓 활활
눈비바람 꺼내 불바람
흔들림에 대한 기억으로 흔들리며
불꽃은 타오른다
 
출렁출렁
빛 그림자
달빛도 풀린다
 
젖은 나무는 
연기도 피워 보지만
 


재가 
가볍다



시/ 함민복

1962년 충북 중원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우울氏의 一日』『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등이 있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함.

 

낭송/ 김근 - 시인.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뱀소년의 외출』『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등이 있음.


출전/『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음악/ 권재욱

애니메이션/ 정정화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업 안내와 <문학집배원>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letter.munjang.or.kr)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