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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박완서, 「식사의 기쁨」 중에서 (낭송 천정하)


어떤 자리에선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 하는 물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 그때그때 달라서 선뜻 대답할 수 없었어요. 잠깐 생각을 거친 뒤  “밥.“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소설가의 취향’을 궁금해하던 이들을 실망하게 했지요. 
식당 밥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전에는 손님에게 찬이 없어도 밥을 지어 대접해 버릇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도 집이 아닌 식당에서 밥을 사고 있더군요. 내 솜씨보다 더 낫고 찬도 다양하니까,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면서요. 천지에 골고루 내리는 눈처럼, 새해엔 따뜻한 밥상이 모든 사람의 나날에 함께하기를 빌어봅니다. 


-2010.12.30   문학집배원  이혜경




박완서, 「식사의 기쁨」 중에서








이 나이에 아직도 극진히 공대해야 할 웃어른이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환대하고 싶은 사람, 우의를 표하고 싶은 사람까지 주위에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한테도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하는 편이다. 그때 밥은 식당밥도 햇반도 아니고 집밥이다. 평소에 흉허물 없이 무심하게 대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착하고 불쌍해 보일 때가 있다. 위로해주고 싶어서 한다는 소리도 집에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소리다. 마음에 남는 친절한 대접을 받고 나서 답례로 한다는 소리도 같은 소리이다. 나는 아마도 밥을 여린 마음, 다친 마음 등, 마음에는 무조건 잘 듣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아나 보다. 그러나 그런 격식 차리지 않는 나의 초대에 선뜻 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빈말로 알아듣거나 정말로 알아들었다고 해도 거북한 듯 비켜간다. 초대라면 의례히 진수성찬을 연상하고 부담 주기 싫어서일 것이다. 하긴 누가 나한테 집밥을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도 그렇게 비켜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자기네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는 초대일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말로라도 그런 초대를 받으면 기쁠 것 같다. 
내가 믿는 ‘집밥’의 효능을 믿어주는 건 그래도 피붙이밖에 없는 것 같다. 따로 사는 손자가 오늘 할머니한테 가서 저녁 먹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올 때가 가끔 있다. 하는 일이 피곤한가, 뭐가 뜻대로 안 되나, 녀석의 목소리가 지친 듯 가라앉아 있다. 그럴 때 나는 막 신이 난다. 마치 내가 지은 더운밥 한 그릇이 녀석에게 새로운 기라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으스대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못 말리는 늙은이다.



 

작가/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너무도 쓸쓸한 당신』『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잃어버린 여행가방』『호미』 등이 있음.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독/ 천정하 - 배우. <청춘예찬>, <남도1> 등 출연.

출전/『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음악/ 권재욱

애니메이션/ 홍예실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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