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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

[시배달] 송찬호,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낭송 홍서준) 동백은 겨울에 피는 꽃이지요. 얇은 꽃잎으로 한겨울 추위를 견디는 붉은 꽃을 보고 송찬호 시인은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동백이 활짝」). 생명을 위협하는 겨울과 싸우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은 여성에 비유되는 꽃이 아니라 “짐승을 닮은 꽃”입니다. 꽃을 밀어내려고 “허리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동백나무에서도 짐승의 신음소리가 나올 것 같죠? 헤쳐 나가기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죠. "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그냥 지나갈 것 같지 않은 그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 올가미 같은 시간을 지나, 다시 새해가 떠올랐습니다. "세차게 가지를 찢고 나온" 동백꽃의 기운을 받아 새해를 힘차게 시작해 보시지요. - 2011.01.0 문학집배.. 더보기
[시배달] 함민복, 「원(圓)을 태우며」 낭송 김근 | 나무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는 불에 타면서 음반처럼 삶의 기억을 하나하나 재생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푸른 잎과 꽃의 기억을 연기에 담아 풀어버리고, 새소리와 달빛도 다 토해내고, 강렬한 햇빛과 독한 눈비바람도 계절에게 돌려줍니다.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다시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순환과정이 ‘원’이죠. 자연에서 빌린 삶을 그 원에 담았다가 남김없이 되돌려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활활 타는 통나무 곁에서 불을 쬐면서도 시인은 나무에 새겨진 그 '원'을 다비(茶毘)시키고 있었군요. 한 해가 저뭅니다. 묵은 나이테를 따라 돌고 있는 아픈 기억은 다 풀어버리고, 새해의 나이테에는 새로운 활력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2010.12.27 문학집배원 김기택 함민복, 「원(圓)을 태.. 더보기
[문장배달] 프리모 레비, 「옛 길들」 중에서 (낭송 박경찬, 김근) 절박하게 굶주린 사람에게 생선을 선물한 게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요. 체사레가 로마의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타고난 상인이라서요? 나치 수용소에서 풀려나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의 한 마을에 수용된 체사레, 그 마을의 시장에 자리까지 확보하고 물건을 사고팔지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물을 주입해 무게를 불린 생선을 팔러 나간 체사레. 그가 걸려든 것은 소련군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장사꾼인 그에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지요. 이익을 남기는 게 본분인 장사꾼으로 하여금 이득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게 만든 무엇. 이 일이 체사레의 마음에 어떤 자취를 남겼을지 궁금해집니다. - 2010.12.23 문학집배원 이혜경 프리모 레비, 「옛 길들」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체사레는 얼굴이 새카맣게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수중.. 더보기
[시배달] 신덕룡, 「만월」 (낭송 박경찬) 햇빛의 가닥가닥 줄기에서 “팔천 가닥의 면발”을 이끌어내는 힘은 오랜 기억 속의 배고픔이겠죠. 어릴 적 시인의 사남매는 이미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한 가닥씩 물고 쩝쩝거리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넘치는 양념 때문에 빛깔과 냄새가 화려하고 요란해서, 요즘 음식은 맛있어 보이지만 금방 질리죠. 밀려드는 음식은 전혀 배고플 틈을 주지 않아 마음까지 비만으로 만들죠. 추억 속의 배고픔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일 것입니다. 가난을 악착같이 기워 추위와 배고픔을 막으려던 어머니의 기억까지 더해져 더욱 그리워지는 별미. 아무리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닌들 이제 어디서 이 별미를 맛볼 수 있을까요? - 2010.12.20 문학집배원 김기택 신덕룡, 「만월」 밀.. 더보기
[문장배달]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낭송 이문하)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새의 선물』 주인공이 당돌하게 선언한 지 어언 15년, 한 아이가 또다시 선언하네요.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노라고. 조숙한 아이들의 선언은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단숨에 괴물이 되어버린 아빠와 모진 매 앞에 속수무책인 엄마. 반복되는 폭력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아이는 그만 부모가 가짜라고 믿기로 했어요. 진짜 부모라면 자기 아이의 아픔을 그토록 모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밤이면 환히 불 켠 집들. 멀쩡해 보이는 집 어디에선가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어린 영혼은 위기 느낀 쥐며느리처럼 오그라들고 있겠죠. ‘토끼 같은 사람’을 단숨에 괴물로 변하게 하는 무엇, 문득 마음에 한기가 드네요. - .. 더보기
[시배달]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낭송 박후기)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이 감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해도 오히려 가지들이 제멋대로 까불고 흔들리면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네요. 연약한 실가지가 강한 댓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댓바람더러 더 세게 불라고 놀리면서 바람을 즐기고 있네요. 우듬지와 실뿌리 사이 ‘땅심’이 드나드는 이 놀랍고 자유로운 소통의 세계. 땅의 질서와 하늘의 조화가 한 그루 나무속에 완벽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를 축소시킨다면 바로 이 나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실뿌리는 땅의 중심에 닿아 있고 우듬지는 하늘의 무한한 넓이로 뻗어 있는 세계. 그래서 이 세상 생명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가 제 ‘깜냥껏’ 삶을 누리는 세계. - 2010.12.13 문학집배원 김기택.. 더보기
[문장배달] 찰스 디킨즈, 「올리버 트위스트」 중에서 (낭송 김세동, 홍서준, 박후기) 거칠 것 없어 보이고 듬직하던 한 선배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선배에게도 피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상대방이 뻔히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그것도 큰소리로 말하는 어떤 이의 ‘결정적 장면’을 목격한 뒤에 그 사람이 보이면 피해 간다더군요. 그토록 듬직한 선배조차 감당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어요. 참새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야, 감당 안 되는 사람을 피하는 게 당연한 거겠지요. 올리버 트위스트에게 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마구 퍼붓던 노어가, 밟히다 못해 꿈틀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고발하는 대목이에요. 거짓은 참 힘이 세지요. 거짓의 기세가 거세어진 세상, 그에 휘둘리지 않고 맞설 힘이 절실해지는 요즘이에요. -2010.12.09 문학집배원 이혜.. 더보기
[시배달] 박주택, 「국경」 (낭송 박주택) 잠그면 바로 벽이 되는 문.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는 문. 드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단하기 위해 있는 문. 사람들은 바로 그 문을 닮았군요. 그래서 벽을 맞댄 이웃과의 사이가 ‘국경’만큼 멀어지게 이르렀습니다. 문이 벽이 되면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기도 하겠지만 문 안에 있는 사람도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아이디 속에서 익명이 되어 병적으로 소리치는 것도 제 문에 제가 갇혀 숨이 막히니까 마음껏 숨 쉬고 싶어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람의 마음은 그 문처럼 생겼을 겁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김영승, 「반성 743」) - 2010.12.06 문학집배원 김기택 박주택.. 더보기
[문장배달]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낭송 김세동, 천정하, 홍서준) 제 상처가 너무 아파,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보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확대경이 눈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자기의 상처만 크게 보이는 그런 시기. 아들이 자신에게 매몰되는 걸 구해내기 위해 어머니는 과감하게 엉덩이를 드러내네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부부가 즐겨 찾던 식당주인에겐 이런 기억이 있었네요. 일상에서 익히 보아온 일과 그 경계를 살짝 넘어선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한 이 소설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 가진 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감히 꿈꾸었는데, 이런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면, 한번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2010.12.02 문학집배원 김기택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 더보기
[시배달] 조은, 「등 뒤」 (낭송 이영주) 이렇게 슬픔이 잘 익은 시, 너무 잘 익어서 다디단 즙이 확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온몸으로 단맛이 핏줄을 따라 짜릿하게 스며들 것만 같은 시를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서, 제 마음 말고는 숨 막히는 슬픔을 처리할 길이 없을 때, 소월 같은 시인은 슬픔을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키웠지요. 끝내 터뜨리지는 않고 터지기 직전까지 탱탱하게 키우기만 했지요. 감염력이 큰 그 자학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현실의 고통을 즐기려고 했지요.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등 뒤’로 느껴도 그 격렬함이 온몸을 뒤흔드는 슬픔.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맑아지는 환희의 순간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2010.11.29 문학집배원 김기택 조은, 「등 뒤」 등 뒤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