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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배달] 함민복, 「원(圓)을 태우며」 낭송 김근 | 나무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는 불에 타면서 음반처럼 삶의 기억을 하나하나 재생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푸른 잎과 꽃의 기억을 연기에 담아 풀어버리고, 새소리와 달빛도 다 토해내고, 강렬한 햇빛과 독한 눈비바람도 계절에게 돌려줍니다.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다시 자식으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의 순환과정이 ‘원’이죠. 자연에서 빌린 삶을 그 원에 담았다가 남김없이 되돌려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활활 타는 통나무 곁에서 불을 쬐면서도 시인은 나무에 새겨진 그 '원'을 다비(茶毘)시키고 있었군요. 한 해가 저뭅니다. 묵은 나이테를 따라 돌고 있는 아픈 기억은 다 풀어버리고, 새해의 나이테에는 새로운 활력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2010.12.27 문학집배원 김기택 함민복, 「원(圓)을 태.. 더보기
[시배달] 신덕룡, 「만월」 (낭송 박경찬) 햇빛의 가닥가닥 줄기에서 “팔천 가닥의 면발”을 이끌어내는 힘은 오랜 기억 속의 배고픔이겠죠. 어릴 적 시인의 사남매는 이미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한 가닥씩 물고 쩝쩝거리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넘치는 양념 때문에 빛깔과 냄새가 화려하고 요란해서, 요즘 음식은 맛있어 보이지만 금방 질리죠. 밀려드는 음식은 전혀 배고플 틈을 주지 않아 마음까지 비만으로 만들죠. 추억 속의 배고픔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일 것입니다. 가난을 악착같이 기워 추위와 배고픔을 막으려던 어머니의 기억까지 더해져 더욱 그리워지는 별미. 아무리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닌들 이제 어디서 이 별미를 맛볼 수 있을까요? - 2010.12.20 문학집배원 김기택 신덕룡, 「만월」 밀.. 더보기
[시배달]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낭송 박후기)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이 감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해도 오히려 가지들이 제멋대로 까불고 흔들리면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네요. 연약한 실가지가 강한 댓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댓바람더러 더 세게 불라고 놀리면서 바람을 즐기고 있네요. 우듬지와 실뿌리 사이 ‘땅심’이 드나드는 이 놀랍고 자유로운 소통의 세계. 땅의 질서와 하늘의 조화가 한 그루 나무속에 완벽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를 축소시킨다면 바로 이 나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실뿌리는 땅의 중심에 닿아 있고 우듬지는 하늘의 무한한 넓이로 뻗어 있는 세계. 그래서 이 세상 생명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가 제 ‘깜냥껏’ 삶을 누리는 세계. - 2010.12.13 문학집배원 김기택.. 더보기
[시배달] 박주택, 「국경」 (낭송 박주택) 잠그면 바로 벽이 되는 문.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는 문. 드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단하기 위해 있는 문. 사람들은 바로 그 문을 닮았군요. 그래서 벽을 맞댄 이웃과의 사이가 ‘국경’만큼 멀어지게 이르렀습니다. 문이 벽이 되면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기도 하겠지만 문 안에 있는 사람도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아이디 속에서 익명이 되어 병적으로 소리치는 것도 제 문에 제가 갇혀 숨이 막히니까 마음껏 숨 쉬고 싶어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람의 마음은 그 문처럼 생겼을 겁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김영승, 「반성 743」) - 2010.12.06 문학집배원 김기택 박주택.. 더보기
[문장배달]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낭송 김세동, 천정하, 홍서준) 제 상처가 너무 아파,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보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확대경이 눈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자기의 상처만 크게 보이는 그런 시기. 아들이 자신에게 매몰되는 걸 구해내기 위해 어머니는 과감하게 엉덩이를 드러내네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부부가 즐겨 찾던 식당주인에겐 이런 기억이 있었네요. 일상에서 익히 보아온 일과 그 경계를 살짝 넘어선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한 이 소설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 가진 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감히 꿈꾸었는데, 이런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면, 한번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2010.12.02 문학집배원 김기택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 더보기
[시배달] 조은, 「등 뒤」 (낭송 이영주) 이렇게 슬픔이 잘 익은 시, 너무 잘 익어서 다디단 즙이 확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온몸으로 단맛이 핏줄을 따라 짜릿하게 스며들 것만 같은 시를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서, 제 마음 말고는 숨 막히는 슬픔을 처리할 길이 없을 때, 소월 같은 시인은 슬픔을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키웠지요. 끝내 터뜨리지는 않고 터지기 직전까지 탱탱하게 키우기만 했지요. 감염력이 큰 그 자학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현실의 고통을 즐기려고 했지요.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등 뒤’로 느껴도 그 격렬함이 온몸을 뒤흔드는 슬픔.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맑아지는 환희의 순간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2010.11.29 문학집배원 김기택 조은, 「등 뒤」 등 뒤가.. 더보기
[시배달] 윤의섭, 「바람의 냄새」 (낭송 노계현) 몸의 기억력은 머리의 기억력보다 정확하고 섬세하죠. 건망증은 기억을 갉아먹어도 몸은 결코 제가 겪은 일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머리보다는 몸의 감각으로 사유하려 하지요. 이 시인은 냄새의 기억으로, 한때 이 땅을 살다간 수많은 삶과 죽음의 비밀을 바람 속에서 찾아내려 합니다. 그 호기심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 코를 들이대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시간의 기억을 넘기도 하고, “전혀 가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처럼 공간의 기억을 넘기도 합니다. 그 후각은 “먼 혹성에 천 년 전 피었던 풀꽃 향”과 같이 우주적이며, 그 욕망은 모든 삶이 시작된 ‘발원지’를 찾아내려는 데까지 닿아있습니다. 이 코의 상상력은 수십, 수백만 년 이 땅을 살다간 선조들.. 더보기
[시배달] 김경미, 「오늘의 결심」 (낭송 김경미) 한때 시인의 욕망은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을 향하고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켰겠지요. 그러나 삶은 그 욕망을 끊임없이 좌절시켜서 진실하게 열심히 살수록 상처받고 손해 본다는 걸 인정하게 했겠지요. 이 시를 쓰게 한 힘은 바로 이러한 상처에 대한 분노와 오기 아니었을까요? 그러므로 ‘오늘의 결심’은 삶을 붙들고 아등바등 사느라 헛된 힘을 쓰지 않겠다는 것. 계산적으로 눈치 보면서 처세하여 삶이 주는 상처를 영리하게 피하겠다는 것. 이를테면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을 닮아보겠다는 것. 진지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쓸데없이 마음만 아프게 하는 순진한 태도이므로. ※ 주의 : 이 시를 읽을 땐 반어에 유의할 것. 이 시의 반성문 말투는 진실을 억압하고 얄팍한 계산을 부추기는 삶에 대한 비아냥거림과 조롱이므로.. 더보기
[시배달] 곽효환, 「지도에 없는 집」 (낭송 정인겸) 답답하다고 숨 막힌다고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훌쩍 떠날 수 있나요? 생각만 해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솟는 곳이 마음속에 있다면 어떨까요? 투명인간이 되어 잠시 세상에서 잠적하고 싶을 때, 죽은 듯 이 세상에서 잠시 없어지고 싶을 때,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현실도피라고요? 백석 시인은 눈 오는 밤 나타샤와 함께 깊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며 차라리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라고 했습니다. 마음도 하나의 생태계라면 세상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공간이 필요하지요. 물론 이 공간은 허구이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자유로운 곳이죠. 시는 그런 곳에 집 짓는 일을 .. 더보기
[시배달] 박라연, 「고사목 마을」 (낭송 박신희)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에서 종종 진한 고통의 시간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고통을 환희로 만든 오랜 시간의 숙성을 생각하지요. 온몸을 전율시키는 마술을 피와 살결로 생각하지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산 채로 벼락을 맞는”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아픔은 당장은 몸과 마음을 파괴할 것입니다. 시나 예술에는 그 아픔을 오랫동안 숙성시켜 환희로 바꾸는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돌처럼 단단하게 말라 죽은 나무에서 “빛이 뭉클” 만져지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나무에서 “아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극점에서 벼락 같은 빛이 지나가 겉은 망가졌으되 내면은 밝아진 바로 그 얼굴이겠죠. -2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