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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

[문장배달] 무하마드 유누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중에서 (낭송 박웅선, 신용진) 인도가 확보되지 않아서 위험한 시골길을 걸을 때, 툭 튀어나오거나 푹 꺼진 보도블록 때문에 발목을 접질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새로 길을 내거나 도로 공사를 하면 그 공사의 총책임자가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연약한 이와 함께 그 길을 걸어 보아야 한다는. 노모나 어린 딸, 혹은 몸이 불편한 지인과 조금만 걸어본다면 그 길이 보행자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금세 알 테고, 지금보다는 나은 길이 되리라는 생각에요.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유누스는 대학의 학과장이 되자마자 학과장실을 쪼개어 교수 연구실로 나누었다지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을 벌여 빈민들에게 자립의 기반을 심어주었고요. 탁상행정과 거리가 먼 그의 해법은 참 간결하기도 하지요. - 2010.10.28 문학집배..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니콜 크라우스「사랑의 역사」 (낭송 서현철, 김기연, 이화룡) 어제 밤하늘을 보셨나요? 이틀 동안 천둥이 치며 비가 내렸고 기온은 떨어졌고 기분은 우울해졌는데, 어젯밤 하늘에는 밭이랑 같은 하얀 구름들이 줄지어 서 있었거든요. 그리고 반달이 떠 있었어요. 서울에서 친구가 일산까지 찾아왔기에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환하게 개는 밤하늘을 본 거예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렸어요. “야, 정말 멋진 밤하늘이야.” 이 며칠 우울했는데, 하지만 그걸 표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있었던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제 괜찮아?” 걱정하는 친구 때문에 우울한 표정을 계속 지었지만, 사실 이미 달을 봤기 때문에, 또 내색하지 않고 두고봐주는 친구가, 그것도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지요. 다행히도 저 역시 점점 더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성석제「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낭송 이연규, 선종남) 언젠가 스페인에 가서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 할머니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죠. 상대의 모든 말을 한 번 더 따라하면서 박장대소하는 재능이었어요. 그 웃음에 전염이 돼서 급기야는 제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그게 정말 우스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웃었어요. 저도 지기 싫어서 손뼉을 쳐가면서 웃었어요. 할머니의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전 취미가 소원리스트 만들기인데, 그 때 소원이 하나 더 추가됐어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 되기. 식당에서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는 법을 배우기. 이건 누군가 웃으면 반드시 따라 웃어야만 이룰 수 있는 소원이죠. 2009. 3. 19. 문학집배원 김연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박현욱의「아내가 결혼했다」 (낭송 박남희, 박지일) 이런 경우를 두고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 사랑이라는 게,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라고 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노래가 우리가 부르는 가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그대만을 기다린다느니, 사랑, 영원, 이런 맹세투의 말에는 헤어짐의 씨앗이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증오에 차서 서로를 저주하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노래는 물론이고 소설 주인공들 간의 대화도 참 리듬감이 있지요? 대화와 노래 사이의 문장에도 노래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건 사람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26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신혼여..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김애란「나는 편의점에 간다」 (낭송 박지아) 6월21일 통계청이 내놓은 '2005년 기준 서비스업 총조사 결과로 본 소매업과 숙박·음식점, 사업서비스업의 구조변화'(이름이 좀 길죠? 하는 일이 많은 데는 별 생각 없이 이런 식의 제목을 뽑는 것 같습니다)에 따르면 24시 편의점 등 체인화 편의점은 2001년 4,116개에서 2005년 10,034개로 4년 만에 143.8%(5,918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에 대형소매점도 238개에서 316개로 32.8%(78개) 늘었네요. 하지만 주택가 근처에 많았던 구멍가게(기타 음식료품 위주 종합소매업)는 107,365개에서 10.6%(11,398개)가 감소한 95,967개로 줄었습니다. 편의점은 이제 도시인, 아니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편리와 필요’의 저장고, 무소부재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낭송 정인겸, 박유밀) 소설을 두고 ‘풍속의 역사’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모여 기록이 될 때 역사가 되는데 소설은 특히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담아냅니다. 소설의 한 문장이 당대 풍속의 예민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의 첫 대목이 바로 그런 상징적인 예입니다. ‘그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는 이 한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누가 남학생들에게 팔렸을지. 그걸 알았다면 비누 회사들이 이 소설가에게 감사장을 줬어야 했을겁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까지도. 2007. 1. 31. 문학집배원 성석제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공선옥의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낭송 공선옥, 최일화, 박남희, 박지일)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보니 1998년 9월이군요. 어디 간들 덜 추운 데가 없던 시절에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들, 좀 따뜻해졌을까요? 여기서 얼마나 된다고, 여기나 거기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하군요. 비록 담배를 끊은 남자들은 많아졌지만(저부터도 그렇습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19.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공선옥 우리는 광주역에 내렸다. 온 세상은 때글때글 얼어 있다. 무등산은 검다. 속은 쓰라리다. 어디로 갈까. 사내가 내 손을 잡아 끈다. 나는 휘적휘적 그를 따라간다. “뭣 좀 먹을래?” “속이 쓰려.” 우리는 광주역 앞의 국밥집으로 간다. “많이 먹어.” 나는 많이 먹는다. “광주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새끼들 보러..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무라카미 하루키, 「1Q84」 中에서 (낭송 손경숙) l 2009.10.29 우리 집의 고양이 남매를 볼 때 문득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가 주는 존재감이랄까요. 나도 고독한데, 고독한 고양이까지 함께 살고 있다… 이 기분 아시겠어요? 고양이들이 고독하지 않게 제가 돌봐주면 되지 않냐구요? 다마루라면 그럴 수 있겠죠. 타자(他者)를 자기 동일시하여 자신의 고독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 하나의 고독만으로도 허덕이는’ 아오야마 같은, 그리고 저 같은 인간은 그럴 수 없답니다. 아유미는 어떤가요. 가족도 동료도 있지만 그걸로는 고독을 해결할 수 없어 하룻밤의 남자를 찾아다닙니다. 아오야마, 다마루, 아유미… 우리가 고독 혹은 타자(他者)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1971년 자기들이 수출한 것이 고독이란 걸 알면 이탈.. 더보기
[시배달]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이름과 이름 뒤에 붙은 온갖 계급장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만, 그것이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죠. 당장 급한 밥벌이 문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것만도 벅차서, '나'와 '내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 건 먹고 사는 일을 처리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한가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 질문이 없는 동안은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도 한없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때 이 질문은 느닷없이 기습하여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2010.06.21 문학집배원 김기택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 더보기
[시배달]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을 동경한 적은 있죠. 욕망의 근원인 몸을 고통으로 단련시키거나 모든 욕망을 놓아버리는 수행을 통해 흔들림 없는 평안을 찾고도 싶었죠. 그런데 폐로 흡수한 빗물로 에너지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독립영양인간'이라니! 이 시인은 야생적인 상상력으로 혁명적인 진화를 꿈꾸는군요.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일까요?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두 삶을 사는 사람. 세상은 조금도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내 몸을 상상력으로 변형시켜서라도 나를 억압하는 모든 일과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사람. 2010.6.14 문학집배원 김기택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무엇엔가 걸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