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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릴레이 인터뷰

[문화나눔 릴레이인터뷰] 제2탄. 가수 조덕배 님



[문화나눔 릴레이인터뷰 영상] 가수 조덕배 님




 



‘꿈에’, ‘나의 옛날이야기’,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 거야’,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너풀거리듯’ 등의 지금도 애창되는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킨 가수 조덕배 씨를 2011년 12월 3일에 만나 그의 음악활동과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으로 지원되는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지원사업으로 제작된 <조덕배의 희망찾기> CD에 음원을 기부한 그는 “복권기금 문화나눔을 통해 나온 음반으로 사람들에게 더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더 많이 나누고, 관련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제6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대상(대통령상)을 그는 ‘이 상은 의미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라고 주신 것 같다. 오늘도 장애인연극제인 나눔연극제에 초청을 받아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런 일들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주신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불편한 그는 2009년 미사리 공연을 갔다가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뇌졸중 증세를 일으켜 지금도 계속 치료를 받고 있어 목소리와 발음이 완전치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뇌졸중 예방 캠페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으며,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조덕배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나의 노래로 희망을 나누다

지승호(이하 지) -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조덕배(이하 조) - 많이 좋아졌는데요. 건강이 좋아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지 - 3, 4년 정도 지나도 차도가 없으신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재활을 위해 노력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조 - 재활도 많이 했고요. 좋다는 것은 다해봤어요. 민간요법도 해봤고요. 역시나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게 예방할 수 있는 병이거든요. 예방이 가능한데, 그걸 못한 게 제 자신에게 미안해요.


지 - 팔굽혀펴기도 몇 백 번씩 하시고, 운동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조 - 운동을 많이 했고요.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하고, 침도 맞고 뜸도 뜨고, 진작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으면 뇌졸중에 안 걸렸을 거예요. 



지 - 아까도 노래하시면서 “내가 예전 음반을 듣다보면 내가 옛날에 노래를 참 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지금 노래로만 평가할 수도 있으니까요. 


조 - 두렵죠. 두려운데, 어떤 희망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가느냐 하면요. 요즘 대한민국 30, 40, 50대, 60대 성인 장년층이 많이 힘들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아주 힘들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저를 무대로 안내하는 것 같습니다. 밝은 미래가 분명히 올 거라는 자신감과 신념을 가지고 무대로 올라가는 거죠. 평생 이렇게 노래가 안될 것 같으면 지금도 무대에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좋아지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여러분들한테는 노래를 넘어서 기대와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올라갑니다.


지 - 계속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무대에 서신다는 거군요. 선생님은 예전부터 장애가 있으셨고, 그래서 더 장애인 분들에게 희망을 주셨던 것 같은데요. 올해 제6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대상(대통령상)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조 - 저는 진짜로, 그렇게 큰 상을 받으리라고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겠지만, 저야말로 의외의 큰 상을 받아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깨가 무겁기도 하구요. 그 상은 진짜로 장애인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라고 주신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오늘도 장애인연극제인 나눔연극제에 초청을 받아서 노래를 불렀고요. 이런 일들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주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 하는데요.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뇌졸중 환자가 1년에 보통 15만 명이 발생을 한대요. 병원에 있다 보면 환자로 환자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고생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할까 생각을 해보다가 음반을 준비했습니다. 복권기금 문화나눔 사업의 일종으로 해서, 저는 음원을 기부하고 음반을 만들어서 각 지역의 병원에 무료로 배포를 했어요.



지 - ‘조덕배의 희망찾기’라는 타이틀로 제작된 CD는 베스트 앨범의 성격이던데요. 이걸 무료로 나눠주시면 수입에도 지장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조 - 저도 지금 많이 아팠다가 완쾌가 되어가고 있는 와중이구요. 무언가를 저도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기부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제가 갖고 있는 음악을 여러분들에게 기부를 하게 된 거죠.


지 -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전부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 - 그렇죠.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노래들만 골라서 넣었습니다.


지 - 복권기금 문화나눔의 장애인 창작 및 표현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되어서 음반이 나온 것 같은데요. 문화나눔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조 -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의논을 해서 더 큰 일을 준비하고 제가 몸이 점점 나아지는 것과 발맞춰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요. 어쨌든 복권 기금으로 처음으로 기금을 써 본 거예요. 내 음원을 투자해서 음반을 만들어서 병원에 있는 관계자들한테 드리니까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마음이 뿌듯했어요.


지 - 받은 분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나누고 싶은 마음 자체가 들어있으니까요.


조 - 저한테 오히려 선물이었어요. 내가 누구를, 나의 작은 것으로 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 - 예상하시기 쉽지 않겠지만, 언제쯤 예전처럼 노래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조 - 여러분들이 더 많이 격려해주시고, 저도 노력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잠깐만 쉬었다하죠. 왜 이것을 사왔냐 하면 힘이 좀 떨어져서 일부러 단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케이크 좀 드세요. 되게 힘드네요. 세 곡 밖에 안했는데. 난 노래하는 게 옛날에는 이렇게 힘이 드는 건지 몰랐어요.


지 - 건강 때문에 그러신 거죠?


조 - 그렇죠. 당뇨는 없는데요. 이 병에 걸렸을 때 당뇨가 합병증으로 있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병원에 있으면 제일 무서운 게 밤에 삐뽀삐뽀 소리 들리는 건데요. 하루 밤에 세 번이나 들릴 때도 있어서 무섭죠.


지 - 뇌졸중 홍보대사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조 - 홍보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설 거예요. 뇌졸중 학교 사람들과 조만간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 그 분들하고 의논을 해봐야죠.





지 - ‘나의 옛날이야기’는 중3때 만드셨고, ‘꿈에’는 고1때 만드셨다고 하던데요. 그때부터 가수의 꿈을 꾸신 건가요? 가사 내용을 봐도 그때 그렇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셨던 것을 보면 굉장히 조숙한 느낌인데요.

조 - 꿈은 있었지만요. 그 노래로 제가 데뷔를 하리라고는 생각 못했죠. 그건 사춘기 때 그냥 만든 거예요.


지 - 78년에 앨범을 발표하셨잖아요. 그건 1집으로 안 치신 것 같은데요.


조 - 그냥 없어진 거죠.


지 - 그때 왜 ‘꿈에’ 같은 노래를 안 넣으셨나요?(웃음)


조 - 그때는 그게 좋은지 몰랐죠. 더 좋다고 생각하는 다른 노래를 했는데, 망했어요. 우린 표현을 그렇게 해요.(웃음) 팬들한테 관심을 못 받으면 망했다고 그러거든요.


지 - 그래도 음악적으로 뭔가를 풀려고 만드신 걸 거고, 의미는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조 - 전혀 없죠.(웃음) 창피해서 다 부셔버렸어요. 음악에 대한 개념과 생각도 시간이 흐르니 달라지더라고요. 대중이 뭘 원하는지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요. 일단 발표한 다음에 대중들한테 물어보는 거거든요. 실패할 수도 있는 거니까. 첫 번째 앨범은 어린 나이에 실패를 봤죠. 두 번째지만 첫 번째라고 되어 있는 1집 ‘나의 옛날이야기’ 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수

지 - 선생님 노래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는 ‘꿈에’일 텐데요. 그 노래가 수록된 음반이 150만장 정도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성공하시고, 대중들의 사랑의 받으면서 오만했던 시절도 있었다, 공연할 때 객석이 꽉 차지 않아서 공연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조 - 그땐 어릴 때니까요. 기고만장하고, 교만하고, 자만했고, 지금 생각하면 철딱서니가 없었죠. 그렇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솔직하고 충실했던 마인드를 가졌던 시절 같아요. 교만을 함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지금은 없어요. 그때는 뭣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표현했는데요. 지금은 그때가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부끄럽죠. 그렇지만 그게 내 모습이었고, 누구나 변해가잖아요.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변해 가느냐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기 주변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궤변 같지만 사실이더라고요.


지 -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을 겪으셨기 때문에, 그때는 내가 인기를 많이 얻어서 오만한 구석이 있었고, 지금은 다른 가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은데요.


조 - 지금도 많은 팬들의 기다림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아, 나는 참 복이 많구나’, 그렇게 많은 실수와 많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내가 만들어놓은 노래 몇 곡이 이렇게 나를 지탱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되게 행복해요. 


지 - 어쨌든 실수와 잘못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그때 선생님의 감성적인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선생님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의 추억에 빠지기도 하구요.
 

조 - 자기의 젊은 시절을 담보로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추억의 한 부분을 조덕배의 노래와 함께 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의리 있게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어느 가수 못지않게 행복하고, 그런 게 자랑스럽게 느껴져요.




자신만의 소중한 달란트를 일깨우는 것

지 - 그래서 장애가 있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선생님 노래도 노래지만, ‘저 분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도 소통이 되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노래가 더 위로를 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많은 활동을 하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노래가 안 나오는 상태에도 불구하구요.


조 - 저는 오히려 아프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했어요. 내 음악과 장애를 한 번도 연관을 두지 않았어요. 특히나 아픈 사람들이 노래를 하고 그럴 때는 노래를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 멋지게 해야 된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동정으로 노래를 인정받으려고 하면 저는 화가 났어요. 간혹 그런 사람을 한두 명 본 적이 있는데, 나한테 욕을 무지하게 먹었죠. 진짜로 욕 많이 먹었어요. 아프기 때문에 더 노래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동정이나 외향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생각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저는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를 잘 만나서 우리 엄마가 정상적인 애랑 같이 키웠기 때문에 나는 그냥 걷는데 좀 불편하고, 100미터가 좀 늦을 뿐이라고 생각했었죠. 일반 사람들하고 똑같이 다녔고, 그냥 일반 사람인 것처럼 살았어요. 그게 내 착각일지 모르고, 자기 최면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어쨌든 좀 불편했지만, 그냥 살았어요. 2년 반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 ‘아 장애가 오면 이렇게 힘든 거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죠. 그리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리하게 사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 - 장애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이 그런 것을 못 느끼게끔 신경을 많이 써주셨던 것 같아요.


조 - 그런 것 같아요. 그랬어요.


지 - 집안도 잘 사는 집안이어서 그런 걸 덜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조 - 저는 그게 잘 사는 건지 몰랐는데요. 지나고 보니까.....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항상 불평불만을 많이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제가 천사도 아니고, 이렇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분명히 거짓말일거예요.



지 - ‘뇌졸중 겪으며 2년간 누워 지내면서 음악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깨달았다’고 하셨는데요. 아프시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지셨나요?


조 - 사람은요. 그런 것 같아요. 아주 현명한 사람은 그러지 않을 텐데요. 저는 현명하지 못해서 당해보고서야 알아요. 내가 노래가 안 나오니까 깨달은 건데요. 그동안 노래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잊어버리고 살았던 거죠. 오랜 세월동안 습관처럼 노래하고 살다 보니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난 것으로 착각을 했고, 가수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들은 가끔 인식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았거든요.


지 - 어떤 인터뷰에서는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가수가 된 것 같다’는 표현도 하셨는데요. 건강하고 관련이 된 건가요?


조 - 아니요. 저는 20년 이상을 가수를 할지는 몰랐어요. 가수는 젊은 시절에 잠깐 하고 마는, 지나가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영속성을 가지고, 지속성을 가지고 노래를 할 줄은 상상을 못했죠. 그런 가수들은 스티비 원더 같은 사람들, 냇킹콜 같은 사람들, 이미자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나 영원히 하는 것이 가수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던 젊은 사람이었던 거죠. 가수가 진짜 되니까 신기하더라고요. 가수라는 것은 먼 나라의 동화 속에 나오는 무지개 같은 것 인줄 알았는데요. 그렇게 되고 싶던 가수가 됐는데, 어느 순간에 그걸 잊어버렸던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가수가 됐다는 걸 잊어버리고,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가수였던 것처럼 착각 속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20년 하다보니까, 그래서 짜증 속에 살다가 쓰러져 보니까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게 된 거죠. 깜빡 잊어버렸던 것이 생각난 겁니다.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가수가 된 거잖아요. 가수 중에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가수가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았는데, 나 자신한테 상처를 주고, 그렇게 짜증을 내고 살았던 거죠.


지 - 아프실 때 후배와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확인했을 것 같은데요.


조 - 적우가 병문안을 왔더라고요. 나를 위해서 콘서트를 했다고 수익금을 저한테 갖다 주더라고요. 돈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가수들 중에서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후배가수가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컴백 콘서트를 했거든요. 완벽하지 못한데 컴백 콘서트를 한 거예요. 사회 이홍렬 씨, 백호형, 최백호 씨부터 적우, 윤도현, 박상민, 추가열, 최호섭, 이렇게 많은 선후배 가수들이 우정 출연을 해서 두 시간을 했죠. 제가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못 부르니까. 저한테는 아픈 시간이 상상도 못했던 경험을 많이 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일부러는 하기 싫은 경험이지만, 닥쳤기 때문에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 - 그동안 600여회의 콘서트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5월 21일에 컴백 콘서트를 하셨는데요. 감개가 무량하셨을 것 같습니다.


조 - 그건 그냥 억지로 했던 것 같아요. 무대가 그리워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어떤 확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팬들에게 완벽해지면 다시 오겠습니다, 라고 한 거죠.



지 - 지금 10번째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조 - 예, 예.


지 -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조 - 노래는 다 만들어놨어요. 완벽하게 목소리, 노래만 돌아오면 녹음 들어갈 거예요.


지 - 곡 작업은 계속 하고 계셨네요.


조 - 발표를 하고 싶죠.


지 - 아직 목소리가 완전치 않아서...


조 - 아까 공연장에서 들어보셨지만, 완벽하지 않은 이 상태에서 팬들도 들어주고, 저도 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고요. 프로 가수는 완벽하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음색을 들려줘야 해요. 그러니까 프로죠. 절대로 이런 상태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잠시 잠깐 이런 특별한 무대, 같이 감동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무대는 조금씩 하는데요. 음반이라든지, 콘서트라든지, 그런 공연은 완벽해지면 여러분들한테 들려드려야죠.


지 - 9집에서는 음악적 변화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조 - 음악적 변화는 큰 변화라기 보다는요, 조금 더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가수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일 거예요.


지 - 그럼 10번째 앨범에서도 음악적 변화가 있는 건가요?


조 - 음악적 변화보다도요. 계속 할 수 있다, 라는 그런 현상 자체가 이제는 변화인 것 같습니다. 자꾸 변화를 줄려고 노력했었거든요. 요즘 와서 생각해보면 자꾸 변화를 줄려고 하는 것보다 이제는 오랜 세월 동안 팬들이 들어도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저한테는 변화구요. 음악적인 색깔이라든지 이런 변화 말고,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게 저한테는 변화죠. 


지 - 10번째 앨범을 내시면 전미투어를 하신 후 여행을 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조 - 예.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자고 하는데요. 전에처럼 큰 공연은 안 되겠죠. 하지만 이제는 제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요.


지 - 엠블랙, 휘성, JK김동욱, W&WHALE, 검정치마 등의 후배들이 참여해서 25주년 헌정음반을 냈는데요. ‘아직 나는 젊은데...’ 하는 생각도 드셨을 것 같은데요.


조 - 헌정음반이라는 자체가 늙은 가수가 됐다는 도장을 찍는 느낌이었어요. 인증샷 같은. 그런데 요즘은 어린 애들이 전설이 되던데요. 10년만 되도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하고. 그게 요즘 방송의 트렌드 같은데요. 그건 말일 뿐이고, 요즘 흔히 얘기하는 블루칩들, 잘나가는 후배들, 노래 잘하는 후배들이 노래를 해준다니까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고맙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벌써 내가 저런 음반을 받을 때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느낌이 묘했어요.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 - 나중에 어떤 가수로 기억에 남고 싶으신지요?


조 - 어떤 가수로 남겠다는 것은 제가 계속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한 가지 정립이 되어 갈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가수가 되고 싶다기보다 제가 열심히 활동하고, 멋있게 활동하면 나중에는 팬들이, 그리고 대중가요평론가들이 정리해주겠죠. 저는 목소리가, 노래가 돌아온다면 뭐라고 할까요,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활동하겠죠. 제2의 인생이란 게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영화나 소설책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요. 그게 나한테도 있더라고요. 누구한테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없는 건 줄 알았어요. 인생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것을 알았어요. 본인이 주인공이니까, 이번에 느낀 것은 멋있는 연기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 - 가장 애착이 가는 곡과 앨범은 어떤 건가요?


조 - 전에는 그런 얘길 들으면 제일 많이 팔린 음반을 얘기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제는 다 애착이 가더라고요. 만드는 순간순간은 똑같이 귀하고, 소중하고, 똑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것이 제일 애착이 남는다는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인생 자체가 아이러니컬한 거니까요. 그거 전에는 이상하게 답답하게 생각하고, 그런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진솔한 게 무엇인지, 소중한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 같아요.


지 -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후배 가수들은 있으신가요? 듀엣을 한다든지.


조 - 계획은 아직 없는데요. 많은 후배들이 물망에 있어요. 그 대신 제가 멋지게 만들어놓으면 누구라도 거기에 맞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들이 있거든요. 그때 또 생각을 해봐야죠.


지 -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은 있으신지요?


조 - 다른 계획은 살면서 생기겠죠. 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지만, 계획을 세워서 계획대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제는 하루하루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는 것 같고 그래요.



문화나눔을 통해 아름다움을 전하다


지 - 오늘 무대에 서서 세 곡을 부르시고 힘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이 연극제 자체가 장애인들을 위한 나눔연극제고 하니까, 특별한 감상을 느낀 점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조 - 저는 이분들한테 바라는 게 있어요. 장애인들만을 위한 연극제가 아니고, 대중적이고, 예술적인 인정을 받아서 장애인, 비장애인을 가리지 말고, 테마도 장애인에 국한된 아이템보다는 ‘장애인이 하는 연극인데 어쩌면 멋있게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대중적인 히트를 쳐서 좀 더 큰 무대에 섰으면 좋겠어요. 장애인 연극제라고 해서 장애인들만 오고, 주변 사람들만 오는 그들만의 연극이 아니고, 장애를 가지고 만들었는데, 비장애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얘기들과, 그런 장면들을 만들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그런 뮤지컬이나 연극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단시간에는 어렵겠지만, 아이디어는 단시간에도 나올 수 있는 거거든요.


지 -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말씀을 한마디만 해주세요.


조 - 저는 복권기금 문화나눔을 통해 나온 음반을 통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더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좀 더 좋은 공연을 가지고 만나 뵙겠죠.


지 - 공연은 언제쯤 하실 건가요?


조 - 그건 제가 많이 건강해지면요. 제가 한 가지 테마를 잡아놓은 것은요. 뇌졸중 예방 캠페인인데, 앞으로 그 공연을 하면 많은 가수들이 동참해 줄 거예요.


지 - 빨리 건강해지셔서 무대도 많이 서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 그게 제 소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