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 릴레이 인터뷰

[문화나눔 릴레이인터뷰] 제4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님



[문화나눔 릴레이인터뷰 영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님










2011년 12월 26일 조선호텔에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만났다. 그는 왕성한 음악 활동 가운데서도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2월 19일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홍보대사,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 유니세프 아우 인형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재능기부, 문화나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뛰어난 음악성도 인정을 받고 있는데, 뉴욕에 거주하면서 예술에 대한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뉴욕시 의회로부터 명예로운 시민상을 받았으며, 미국 클래식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한국계 연주자로서는 사라 장, 김지연, 다니엘 리에 이은 네 번째 수상이다. 

그는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교육자로도 헌신하여 현재 UCLA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비롯하여 폐교 위기에 있는 충남 보령의 낙동초등학교 임시 음악선생님으로 부임하여 합창과 연주를 가르쳐 음악회에 내보내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돈보다는 감수성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에게 그런 봉사활동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꿈에 그리던 줄리아드음대 대학원에 입학하기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1년, 줄리아드의 한국인 교수인 강 효 씨를 만나 그가 이끄는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단원이 되면서 한국사람 용재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바그너는 한 때 “허약한 바이올린 연주자나 늙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것”이라 할 만큼 비올라를 평가 절하 했다는데, 리처드 용재 오닐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화음을 담당하던 보조악기를 독주의 무대로 끌어 올리는데 큰 몫을 하고 있으며, 그가 이끄는 실내악 프로젝트 디토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페스티벌로 자리 잡으면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바쁜 공연 일정으로 인해 30분간의 시간 밖에 할애되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순박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승호(이하 지) - 이번 달(12월) 19일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위촉되셨고 여러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고 계신데, 이런 음악 외적인 활동이 음악에 집중하는 데 영향을 주지는 않나요?
 
리처드 용재 오닐(이하 용) - 음악이 제 삶의 최우선이기는 하지만, 저를 발전시키는 다른 활동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스포츠나 자선 활동은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 - ‘나는 한국과 미국 사람’이라고 표현하셨던데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센터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용 - 아티스트로서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할 기회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접하는 것이 큰 경험과 배움이 되곤 합니다. 여러 교육 시스템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죠. 제 삶의 일부도 교육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동안 한국 청소년 그룹과 UCLA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데, 교육은 아주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여러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지 - 폐교 위기에 있는 전교생이 49명인 충남보령의 낙동초등학교 임시 음악선생님으로 부임하셔서 합창과 연주를 가르쳐 음악회에 내보내셨는데요.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용 -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저는 음악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이미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만 거기 해당되는 건 아니에요. 제 꿈은 어린 아이들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저는 미국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는데, 라이브 공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레코드나 TV가 문화 매체의 전부였죠. 그래서 한국에서 낙동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 음악에 흥미를 품도록 도와준 것이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아이들과 정도 많이 들었고, 한국에서 디토의 공연이나 제 리사이틀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초대하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것도 몇 달 전에 뷔르템베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을 때였죠. 진심으로 아이들을 아끼고, 최대한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 활동들이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역 -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지어서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용 - 클래식 음악 공연 개최에는 아주 많은 비용이 듭니다. 예를 들면, 라이브 공연은 실제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는 만큼 많은 계획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자본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아주 성공적으로 지원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프로젝트나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등 우리 공동체 구석구석을 대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 - 기부를 하는 방법도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돈보다는 감수성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용 - 저는 시간 또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저는 늘 직접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변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어요. 특히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이죠. 물론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저 역시 그 부분에 많이 관여하고 있지만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홍보대사 위촉되셨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는지요? 그리고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용 - 지난 1년 동안 홍보대사를 하고 있는데요. 영광스럽기도 하고, 많은 책임감도 느낍니다. 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데, 크라우드 펀딩이나 올해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등이 있죠. 개인적으로도 이들 캠페인의 성공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여러 흥미로운 문화 공동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요. 지난 달, 뉴욕 타임스퀘어서 커다란 전광판을 보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리랑 홍보 영상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 것은 한국을 위한 일종의 ‘소프트 외교’라고 할 수 있죠. 무언가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낌없는 투자는 한국 문화뿐 아니라 한국 자체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지 - 유니세프 아우 인형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유니세프 자선음악회에도 특별 출연하셨잖아요. 
 
용 - 유니세프 홍보 대사를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인데요. 저는 주로 아우인형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우인형 프로젝트는 누구나 인형을 만들어 참여할 수가 있는데, 시작 이래 거의 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기금이 모였습니다.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요. 유니세프는 국제기구로서 자선 기금의 대부분을 아프리카 빈민국의 의약품이나 학교 시설을 위해 투자하고 있죠. 그 자선모금 활동을 돕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를 입양해서 사랑으로 키워주신 분들로부터 남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과 기쁨을 배웠는데요. 전 세계의 헐벗고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지 - 유니세프 데이(Day)에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하셨잖아요. 굉장히 즐거워하시는 것 같던데요.(웃음)  
 
용 - 사실 시구할 때가 세계의 어떤 큰 무대에 설 때보다 더 긴장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야구는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당시 뉴욕에 있을 때였는데 새벽 2시에 전화를 받았어요.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시구를 해달라기에 흔쾌히 승낙했죠. 그러고는 LA로 날아가서 종일 공 던지는 법을 배운 다음, 하루 휴가를 내고 뒷마당에서 시구 연습을 했답니다.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만큼 형편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잘하지도 못했지만,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웃음) 






지 - 실내악 프로젝트 디토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잖아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는 표현도 있을 정도로 클래식의 대중화의 공헌하셨는데요. 반면 너무 대중을 쫓는 게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용 - 디토에 대한 비판도 모두 많은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게 음악은 인생의 전부라고 할 만큼 소중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과 음악을 나누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디토는 제가 한국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이죠. 저 또한 어떤 조직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는 경계하지만,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의 관객들이 점점 줄어들고, 관객의 연령대는 높아지고 있죠. 열기가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디토 콘서트 티켓이 매진되고 10-20대의 젊은 관객들이 클래식 공연을 찾고 있어요. 그럴 때면 어떤 비평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기쁩니다. 디토를 결성한 원래 목적이 기존의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객층을 이끌어내는 것이었으니까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공연을 하다보면 제 음악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데, 앞으로 그런 활동에 주력하고 싶습니다.


지 - 교육도 중시하시는 것 같은데, 제자들을 가르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시나요?
 
용 - 교육은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스스로 좋은 본보기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늘 정직하게,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지 - 재능기부, 문화나눔과 관련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용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홍보대사 활동에 재능기부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 - 가족이 음악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나요?
 
용 - 가족만이 음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깨닫는 것이 아티스트로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 - 내년에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요?
 
용 - 이미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의 디토 활동 계획이 모두 잡혀 있고, 저의 솔로 7집 앨범 녹음도 예정되어 있어요. 링컨센터 챔버 소사이어티와 카메라타 퍼시피카 단원 활동도 계속하고, 9월에는 저를 위해 만들어진 비올라 협주곡을 초연할 예정이라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