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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 20] 심상대,「양풍전」 (낭송 심상대, 염혜란)



소설의 어머니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소설의 젊은 목소리가 계모니 칼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따지는군요. 어머니는 모르는 척 하며 너그럽게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의 이야기가 소설보다 훨씬 중독성이 높겠군요. 생명력 역시 길 것이고요.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 이야기와 아들 소설은 ‘끝’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납니다. 헤어지는 건 언제나 슬픈 법일까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소설을 이만 덮어야 한다는 사실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드는군요. 모두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도.

 

2008. 4. 24. 문학집배원 성석제



심상대,「양풍전」  (낭송 심상대, 염혜란)


 


옛날에 어떤 집에, 옛날에 양풍이 집에, 아버지가 작은집 하나 뒀는데, 이 여자가 하도 지독스러워 가지고-
  엄마는 살았어 죽었어?
죽었어.
  그럼 작은집이 아니네. 계모지.
  있을 때 있을 때, 작은집 둔 건 양풍이 엄마 있을 때야. 양풍이 엄마는 내중에 죽었지.
  으응.
그래 살았는데, 이 여자가 하도 본어머이를 못살게 하고 이래서, 양풍이 어머이가 양풍이를 업고 양녀를 앞세우고 문 앞을 나설 때 산천도 울고 초목도 울었대.
  그런데 그 이야기책 어디서 난 건데, 어머니.
몰라. 옛날에 느이 외할아버지가 내 어려서 읽으라 해서 읽었어. 설에 어대 놀러다니라 하나. 이런 거나 읽으라 그러지. 그런데 양풍이 어머이가 양녀를 업고 나갈 때 어데로 간다고 핸고 하몬, 옛날에 양풍이 외갓집이 잘살 때 종으로 있던 할아버지 집으로 지망(志望)하고 업고 나가니, 하마 그 종이 죽은 지 수년이 돼서 그 집터 찾아가니 쑥대밭이 됐드래.
  으응. (……)
  또 종을 쳤다. 이번에는 상당(上堂)에 있는 하인이 나와 어쩐 일로 이런 먼 지경에 와 어린 소녀가 그러나고 하니, 성은 양(梁)가요 이름은 풍(風)이와 녀(女)라고 했다. 엄마 찾아왔다고 하니, 잠깐만 있으라 하더니 안에 들어가 상감 있는 대 가서 십세 어린 동자, 소녀가 엄마 찾아왔다 하니, 데리고 오라 하여 들어가니, 고대광실 높은 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 버선발로 뛰어와, 양풍아 젖 먹고 싶어 어찌 살았느냐, 양녀야 손 아파 어찌 살았느냐, 하고, 이곳은 너희가 있을 대 아니라고, 양녀는 손목을, 싸놨던 걸 붙여주고, 너는 옥황상전 선녀 가고, 양풍이는 칼을 줘서 나라에 군사가 되어 좋은 사람 되라 했대.
  그럼 양풍이가 받은 건 칼이구만.
그래. 칼.
그게 다야?
거럼 다지.
또 없어?
머? 우터하라고? 마카 잘 먹고 잘 살았다는대.




출전/ 『묵호를 아는가』, 문학동네 2001

작가/ 심상대
1960년 강릉에서 태어나 1990년『세계의 문학』에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필명을 한동안 사용하기도 함. 소설『묵호를 아는가』『명옥헌』『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떨림』『심미주의자』등이 있으며, 제46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함.

 
낭독/
심상대
염혜란 : 연극배우. 연극<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차력사와 아코디언> <장군슈퍼> <반성> 등에 출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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