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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문장배달 Best20] 외젠 다비「북호텔」 (낭송 김내하, 서이숙, 임진숙)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는 절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절망을 넘어서면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요? 세속의 지혜들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죠. 강한 쪽에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나 권력에 복종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나. 하지만 그런 게 어른이라면 부끄럽지 않나요? 아이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지 않나요? 어른이라면 강한 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파괴해도 우리 안의 다이아몬드를 부술 수는 없다고 말해야지요. 절망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어른이 되는 거지요. 정신 좀 차리지 마세요. 끝까지 예뻐지세요. 2009. 4. 9. 문학집배원 김연수. 「북호텔」 외젠 다비 월요일은 라미용이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그는 인심 좋게 차려주는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니콜 크라우스「사랑의 역사」 (낭송 서현철, 김기연, 이화룡) 어제 밤하늘을 보셨나요? 이틀 동안 천둥이 치며 비가 내렸고 기온은 떨어졌고 기분은 우울해졌는데, 어젯밤 하늘에는 밭이랑 같은 하얀 구름들이 줄지어 서 있었거든요. 그리고 반달이 떠 있었어요. 서울에서 친구가 일산까지 찾아왔기에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환하게 개는 밤하늘을 본 거예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렸어요. “야, 정말 멋진 밤하늘이야.” 이 며칠 우울했는데, 하지만 그걸 표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있었던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제 괜찮아?” 걱정하는 친구 때문에 우울한 표정을 계속 지었지만, 사실 이미 달을 봤기 때문에, 또 내색하지 않고 두고봐주는 친구가, 그것도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지요. 다행히도 저 역시 점점 더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성석제「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낭송 이연규, 선종남) 언젠가 스페인에 가서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 할머니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죠. 상대의 모든 말을 한 번 더 따라하면서 박장대소하는 재능이었어요. 그 웃음에 전염이 돼서 급기야는 제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그게 정말 우스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웃었어요. 저도 지기 싫어서 손뼉을 쳐가면서 웃었어요. 할머니의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전 취미가 소원리스트 만들기인데, 그 때 소원이 하나 더 추가됐어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 되기. 식당에서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는 법을 배우기. 이건 누군가 웃으면 반드시 따라 웃어야만 이룰 수 있는 소원이죠. 2009. 3. 19. 문학집배원 김연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를 확률이 많죠. 하지만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말을 잘 못한다면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꽃을 보면 지금은 세상에 없는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그 사람과 그저 한없이 얘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얘기하세요. 2009. 4. 2. 문학집배원 김연수.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그렇게 바쁠 것도 없소..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서 쓰지 말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는 봄이면 시간을 내어서 어떤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은 어땠는지, 그 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세요. 강의 끝. 2009. 4. 16. 문학집배원 김연수.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마지막 날, 로사 누나와 나는 경기여고에서..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김연수,「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낭송 김내하, 임진순, 주성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문장배달을 시작한 이후 1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는 것. 12월 31일 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선 겨울나무가 새해 아침 온전한 겨울나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다들 힘내세요. 2009. 4. 30. 문학집배원 김연수 김연수,「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낭송 김내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