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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20] 외젠 다비「북호텔」 (낭송 김내하, 서이숙, 임진숙)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는 절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절망을 넘어서면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요? 세속의 지혜들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죠. 강한 쪽에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나 권력에 복종해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나. 하지만 그런 게 어른이라면 부끄럽지 않나요? 아이들 보기에 너무 부끄럽지 않나요? 어른이라면 강한 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파괴해도 우리 안의 다이아몬드를 부술 수는 없다고 말해야지요. 절망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어른이 되는 거지요. 정신 좀 차리지 마세요. 끝까지 예뻐지세요.

 

2009. 4. 9. 문학집배원 김연수.


「북호텔」 외젠 다비


 




월요일은 라미용이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그는 인심 좋게 차려주는 술집을 전전했다. ‘쇼프데 생주’에서 ‘봉 쿠엥’까지, ‘카피탈’ 카페에서 ‘북호텔’까지 그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옷이 흐트러지고, 얼굴이 새빨개지고, 술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그들은 ‘북호텔’에 눌러앉았다.

 

“주인장, 우리 마누라 좀 봐요!” 이발사가 소리쳤다. “완전히 취했잖소.”

 

“내가 취했다고?”

 

이발사의 아내가 대꾸했다.

 

“주인아저씨, 내가 술 취한 거 본 적 있수? 취한 건 저 얼간이지.”

 

라미용 부부는 자주 싸웠다. 싸움에서 늘 이기는 것은 이발사였다.

어느 날 밤, 모두들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시간에 이발사의 아내가 르쿠브뢰르 카페로 들어왔다. 공포에 질린 눈에 마치 미친 여자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채색 유리알 브로치로 잠근 낡은 외투를 풀어헤친 후, 맞아서 멍이 든 바싹 마른 어깨를 보여주었다.

 

“이젠 몸에 감각조차 없어요.”

 

그녀는 신음소리를 냈다. 별안간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녀의 외투에 달린 브로치가 반짝였다. 그녀는 그것을 불빛에 비쳐보았다.

 

“얼마나 아름다워요, 내 다이아몬드. 내게 남은 건 이것뿐이야. 라미용도 이걸 빼앗아갈 순 없어!”

 

그녀는 염소 울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갑자기 맴을 돌며 춤을 추었다.

 

“그렇죠, 나 예쁘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잿빛 머리타래를 이마 위로 올리더니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가슴 위의 브로치를 꽉 잡고서는 별안간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발사가 그 직후에 들어왔다.

 

“앙젤을 패줬어.”

 

그가 만족한 듯 말했다.

 

“정신 좀 차렸을 거야. 저녁마다 나한테 돼지고기만 먹였거든.”

 

그는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주인장, 주사위놀이 한판 하겠소?”



출처/『북호텔』, 강 2009

 

 

작가/ 외젠 다비
1898년 프랑스 피카르디 주 메르레뱅에서 태어나 1929년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운영한 '북호텔'을 무대로 한 소설 『북호텔』을 발표함. 소설 『프티-루이』『오아시스 빌라 혹은 사이비 부르주아들』『섬』 등이 있음. 민중주의 소설상을 수상함.

 

낭독/ 
김내하 - 배우. 연극 『날 보러 와요』『이』『즐거운 인생』『꿈속의 꿈』등에 출연.

서이숙 - 배우. 연극 『열하일기만보』『강철』『오레스테스』『리어왕』등에 출연.
임진순 - 배우. 연극 『그릇 그릇』『여행』『자객열전』『벚나무 동산』 등에 출연.

 

음악/ 한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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