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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배달

[문장배달] 토마스 만,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중에서 (낭송 노계현, 장희재) 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다지요. 사고로 불구가 된 프리데만 씨. 남과 다른 신체 조건도 그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할 순 없었죠. 그는 인생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교양을 쌓는 사람이었어요. 십대일 때 한 소녀에게 연심을 품었다가 상처 받은 뒤,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한 부인이 나타났어요. 불구의 몸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그래서 지난 삼십년 동안 당신은 행복하지 못했지요?”라고 묻는 여인. 그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싹 삭제하고 ‘불구’에 확대경을 들이댄 그 물음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라는 마음일까요. 어쩌면 이해의 탈을 쓴 잔혹함일지도 모르겠네요. ‘물가에서 보내는 이런 여름밤’이 비극으로 저물었으니까요... 더보기
[문장배달] 무하마드 유누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중에서 (낭송 박웅선, 신용진) 인도가 확보되지 않아서 위험한 시골길을 걸을 때, 툭 튀어나오거나 푹 꺼진 보도블록 때문에 발목을 접질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새로 길을 내거나 도로 공사를 하면 그 공사의 총책임자가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연약한 이와 함께 그 길을 걸어 보아야 한다는. 노모나 어린 딸, 혹은 몸이 불편한 지인과 조금만 걸어본다면 그 길이 보행자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금세 알 테고, 지금보다는 나은 길이 되리라는 생각에요.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유누스는 대학의 학과장이 되자마자 학과장실을 쪼개어 교수 연구실로 나누었다지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을 벌여 빈민들에게 자립의 기반을 심어주었고요. 탁상행정과 거리가 먼 그의 해법은 참 간결하기도 하지요. - 2010.10.28 문학집배..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니콜 크라우스「사랑의 역사」 (낭송 서현철, 김기연, 이화룡) 어제 밤하늘을 보셨나요? 이틀 동안 천둥이 치며 비가 내렸고 기온은 떨어졌고 기분은 우울해졌는데, 어젯밤 하늘에는 밭이랑 같은 하얀 구름들이 줄지어 서 있었거든요. 그리고 반달이 떠 있었어요. 서울에서 친구가 일산까지 찾아왔기에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환하게 개는 밤하늘을 본 거예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렸어요. “야, 정말 멋진 밤하늘이야.” 이 며칠 우울했는데, 하지만 그걸 표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있었던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제 괜찮아?” 걱정하는 친구 때문에 우울한 표정을 계속 지었지만, 사실 이미 달을 봤기 때문에, 또 내색하지 않고 두고봐주는 친구가, 그것도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지요. 다행히도 저 역시 점점 더 ..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성석제「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낭송 이연규, 선종남) 언젠가 스페인에 가서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 할머니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죠. 상대의 모든 말을 한 번 더 따라하면서 박장대소하는 재능이었어요. 그 웃음에 전염이 돼서 급기야는 제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그게 정말 우스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웃었어요. 저도 지기 싫어서 손뼉을 쳐가면서 웃었어요. 할머니의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전 취미가 소원리스트 만들기인데, 그 때 소원이 하나 더 추가됐어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 되기. 식당에서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는 법을 배우기. 이건 누군가 웃으면 반드시 따라 웃어야만 이룰 수 있는 소원이죠. 2009. 3. 19. 문학집배원 김연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 더보기
[문장배달] 가브리엘 루아, 「찬물 속의 송어」 중에서 (낭송 윤미애) 육 년 전, 제게 ‘장난꾸러기’라는 별명을 붙여준 어떤 아이와 헤어진 적이 있어요. 올해 여름, 다시 만난 그 애와 그 애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했어요. 제 마음속에 있는 그 애는 호기심이 그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여섯 살 배기 꼬마인데, 제 손을 잡고 걷는 그애는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어른들의 슬픔을 이해하기 시작한 소녀였어요. 아이의 꺼풀을 벗는 아이를 지켜보자니, 가슴이 저릿했어요.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여교사가 초등학교 부임했어요. 열여덟 살, 아이와 어른의 중간쯤에 걸친 나이지요. 학급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던 아이 메데릭이 그 여선생님을 사랑하네요. 아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그 한순간을 보게 된 여교사의 마음이 절절하네요. 2010.10.14 문학집배원 이혜경 가브리엘 루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