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슬픔이 잘 익은 시, 너무 잘 익어서 다디단 즙이 확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온몸으로 단맛이 핏줄을 따라 짜릿하게 스며들 것만 같은 시를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서, 제 마음 말고는 숨 막히는 슬픔을 처리할 길이 없을 때, 소월 같은 시인은 슬픔을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키웠지요. 끝내 터뜨리지는 않고 터지기 직전까지 탱탱하게 키우기만 했지요. 감염력이 큰 그 자학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현실의 고통을 즐기려고 했지요.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등 뒤’로 느껴도 그 격렬함이 온몸을 뒤흔드는 슬픔.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맑아지는 환희의 순간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2010.11.29 문학집배원 김기택
조은, 「등 뒤」
등 뒤가 서늘하다
뒤처져 걷는 네가
울고 있다!
파장이 느껴진다
들먹거리는 어깨가 느껴진다
눈물이 양식인 듯
입속으로 자꾸 흘러 들어간다
네 말은 끊길 데가 아닌 데서
끊어진다
너는 검은 웅덩이처럼
세상을 밖으로만 끌어안았다
내가 그 속을 보았다면
우린 벌써 끝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고르고
수면을 때리는 돌멩이처럼
기습하듯 뒤를 돌아본다
얼굴 가득
바위의 이음새 같은 주름이 접힌
너는 눈물을 감추려
얼른 등을 보인다
네 등 뒤도
서늘할 것이다
시/ 조은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 『생의 빛살』 등이 있음.
낭송/ 이영주
시인.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언니에게』가 있음.
출전/ 『생의 빛살』(문학과지성사)
음악/ 권재욱
애니메이션/ 정정화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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