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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낭송 김세동, 천정하, 홍서준)


제 상처가 너무 아파,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보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확대경이 눈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자기의 상처만 크게 보이는 그런 시기. 아들이 자신에게 매몰되는 걸 구해내기 위해 어머니는 과감하게 엉덩이를 드러내네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부부가 즐겨 찾던 식당주인에겐 이런 기억이 있었네요.
일상에서 익히 보아온 일과 그 경계를 살짝 넘어선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한 이 소설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 가진 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감히 꿈꾸었는데, 이런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면, 한번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2010.12.02  문학집배원  김기택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운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왔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남자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직장도 그만두었다. “그러니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식당주인은 사고로 가운뎃손가락의 손마디가 잘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붕대에 감긴 아들의 손을 보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병원 로비였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이 엉덩이 흉터 보이지? 어릴 때 솥뚜껑을 깔고 앉았단다.” “그건 엉덩이잖아요. 전 손가락이고요.” 그러자 다시 바지를 입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당연히 니 손가락이 더 아프지. 하지만 내가 엉덩이를 데었을 땐, 세상 누구도 나보다 더 아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어머니의 엉덩이를 본 후로 식당 주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 누구나 흉터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저 사람의 등에는 아주 보기 흉한 사마귀가 있을 거야. 저 사람 엉덩이에는 종기가 나서 의자에 앉기도 힘들 거야. 그런 상상을 하다보니 개가 물고 간 잘린 손가락 마디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식당 주인이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펼쳐 끝이 뭉툭하게 잘린 손가락을 뚫어지게 보았다. “우리가 찾으러 가요.”


 


작가/ 윤성희
1973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거기, 당신』, 장편소설 『구경꾼들』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함.

 

낭독/  김세동 - 배우. <밑바닥에서> 등 출연.
          천정하 - 배우. <청춘예찬>, <남도1> 등 출연.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 출연.

 

출전/ 『구경꾼들』(문학동네)

음악/ 권재욱

애니메이션/ 강성진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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