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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 20] 루쉰,「아Q정전」 (낭송 이영석, 강신구, 강지은)



문호(文豪)의 작품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게 아닙니다. 대표작이라 해서 엄숙하게 큰 줄거리만 이야기할 뿐 세세한 묘사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작품이든 작은 물방울 하나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물방울이 모여 샘이 되고 샘물이 개울물이 되며 개울물이 강물이, 강물이 바닷물이 되고 마침내 수증기가 되고 저 높은 곳에서 구름으로 떠돌듯 소설도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만인을 감득시키는 걸작이 되겠지요. 그렇게 함부로 재단을 하다니, 뼈다귀가 근질근질하냐고 누군가 묻는 것 같군요. 허나 그대여, 군자는 말로 할 뿐 손을 쓰지 않는 법이라오!
양지쪽에 앉아 뭘 하든 좋을 시절이군요. 저 부러운 시절 속으로 나가 보시지요, 부드럽게.

 

2008. 4. 3 문학집배원 성석제



루쉰,「아Q정전」  (낭송 이영석, 강신구, 강지은)

 


  어느 해 봄 그는 얼큰히 취한 채 길을 가다가 담장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털보 왕씨가 웃통을 벗어젖히고 이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자기 몸도 가려워지는 느낌이었다. 털보 왕씨는 아Q처럼 백대머리 부스럼, 즉 나두창이 있고 수염도 덥수룩해서 사람들은 “왕라이후[王癩鬍](대머리 부스럼 털보 왕씨)라고 불렀는데 아Q는 거기서 나두창의 ‘라이(癩)’ 자만 빼고 부르며 그를 몹시 경멸했다. (…) 아Q는 그자 옆자리에 앉았다. (…)
  아Q도 낡은 겹저고리를 벗고 뒤집어서 검사해보았다. 새로 빨아서인지, 아니면 꼼꼼하질 못해서인지 한참 시간을 들여 이를 겨우 서너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왕털보를 보니, 한 마리, 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연달아 입에 넣고 툭툭 깨물어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맥이 빠져 있던 아Q가 나중에는 슬슬 화가 났다. 같잖은 왕털보도 저렇게 많은데 자신은 이렇게 적다니, 이런 체통 안 서는 일이 있나! 그는 큰 놈을 한두 마리 찾아내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
  그는 부스럼 자국 하나하나가 다 시뻘게져서는 옷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침을 탁 뱉고 말했다.
  “이런 털벌레 같은 놈!”
  “털 빠진 개새끼, 누굴 욕하는 거냐?” 왕 털보가 경멸하듯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
  “누군 누구야, 그렇게 대답하는 놈이지!” 아Q는 일어서서 두 손을 허리춤에 대고 말했다.
  “너 맞구 싶어 뼈다귀가 근질근질하냐?”
  왕 털보도 일어서서 옷을 걸치며 말했다.
  아Q는 그가 도망가려는 줄 알고 주먹을 한 대 날렸지만 그 주먹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벌써 붙들렸다. 왕 털보가 한 번 잡아당기자 아Q는 비틀비틀 끌려가더니 금방 그에게 변발을 휘어잡혔다. 그러고는 담벼락으로 끌려가 늘 당하던 대로 이제 그 위에다 머리통을 짓찧게 생겼다.
  “君子動口不動手(군자동구부동수 : 군자는 말로 이르되 손을 쓰지 않느니라 - 역주)!”
  아Q는 머리를 비틀며 말했지만 왕 털보는 군자가 아니었나 보다. 이 말에 아랑곳 않고 아Q의 머리를 다섯 번이나 짓찧고는 힘껏 밀쳐 버리더니, 아Q가 2미터가량 나가떨어지자 만족해하며 가버렸다.




출전/ 『아Q정전 읽기의 즐거움』, 살림 2006 / 임명신 옮김

 
작가/ 루쉰 (魯迅 : 1881~1936)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근대중국어의 성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문호. 본명은 주수인(周樹人)이고 루쉰은 필명. 반제 반봉건 문학운동을 전개하면서 당국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사용한 1백 가지 이상의 필명 가운데 하나가 루쉰. 대표작으로 『아Q정전』『광인일기』『투창과 비수』『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등이 있음.


낭독/
이영석 : 연극배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유령><달빛 멜로디>, 영화 <라디오스타><선생 김봉두><시간> 등에 출연.
강신구 : 연극배우. 연극 <날보러 와요><마지막 포옹><한 여름 밤의 꿈><리어왕><바쁘다 바뻐> 등에 출연.
강지은 : 연극배우. 연극 <서민귀족><달아달아 밝은 달아><오이디푸스 더 맨> 등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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