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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문장배달]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중에서 (낭송 성경선, 정인겸) 결핍감을 다스리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거예요. 결핍의 뿌리가 깊을수록, 그걸 다스리는 방식은 중독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지요. 쇼핑 중독, 연애 중독, 알코올 중독 등등. 중독의 뿌리엔 아주 커다란 공동(空洞)이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의 말이든 마음이든, 그저 텅텅 울리다 흩어지게 하는 그런 공동이. 버림받은 아이, 머나먼 아프리카에 와서 지켜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홀로 있는 이 소녀는 그 공동을 메우려는 듯 검은 김을 자꾸 집어먹네요. 오래 전 제가 열대에서 지낸 한때, 이방의 외로움과 우기의 막막함을 잠깐씩 잊게 해준 두리안의 그 강렬한 냄새가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코끝에 스치는 듯했어요. - 2010.11.04 문학집배원 이혜경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중에서 나는 버림받았다. 그 생각이.. 더보기
[시배달] 곽효환, 「지도에 없는 집」 (낭송 정인겸) 답답하다고 숨 막힌다고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훌쩍 떠날 수 있나요? 생각만 해도 숨이 크게 쉬어지는 곳, 심장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솟는 곳이 마음속에 있다면 어떨까요? 투명인간이 되어 잠시 세상에서 잠적하고 싶을 때, 죽은 듯 이 세상에서 잠시 없어지고 싶을 때, 시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현실도피라고요? 백석 시인은 눈 오는 밤 나타샤와 함께 깊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며 차라리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라고 했습니다. 마음도 하나의 생태계라면 세상이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공간이 필요하지요. 물론 이 공간은 허구이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자유로운 곳이죠. 시는 그런 곳에 집 짓는 일을 .. 더보기
[시배달] 정철훈,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낭송 정철훈) 러시아어 '주라블리'는 우리말로 '백학'.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죠. 남저음 목소리가 아름답고 낭만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들 잃은 어머니들의 가슴과 눈에서 고통의 진액을 뽑아내는 슬픈 노래였군요. 아기는 한순간이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죠. 그때 아기와 엄마는 팔다리처럼 붙어 잘라낼 수 없는 한 몸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는 몸과 팔다리처럼 붙어 떼어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는 건 그 사람과 사랑으로 연결된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이죠. 한국전쟁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아직도 숨은 쉬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많은 어머니들을 통해 이 비극은.. 더보기
[문화나누미] 문학나눔_문학집배원 / 김기택 시인 인터뷰 [문학나눔] 문학나눔_문학집배원/ 김기택 시인 인터뷰 장소: 대학로 스타벅스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나눔부 시간: 9월.30일(목) 저녁 7시 9월 30일.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유독 9월이 휘리릭 지나갔다고 생각하시나요? 숨가쁘게 달려온 한 달이었지만, 9월의 마지막 날만큼은 무척 의미 있는 인터뷰를 하면서 마무리 했기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제게 시인 김기택 선생님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여러분도 그 이유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인터뷰 들어갑니다. 1. 김기택 시인 인터뷰 이수진: 문학집배원이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김기택 시인: 매 주 시를 한 편식 선정하고 해설을 합니.. 더보기
[시배달]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이름과 이름 뒤에 붙은 온갖 계급장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만, 그것이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죠. 당장 급한 밥벌이 문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것만도 벅차서, '나'와 '내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 건 먹고 사는 일을 처리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한가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 질문이 없는 동안은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도 한없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때 이 질문은 느닷없이 기습하여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2010.06.21 문학집배원 김기택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 더보기
[시배달]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을 동경한 적은 있죠. 욕망의 근원인 몸을 고통으로 단련시키거나 모든 욕망을 놓아버리는 수행을 통해 흔들림 없는 평안을 찾고도 싶었죠. 그런데 폐로 흡수한 빗물로 에너지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독립영양인간'이라니! 이 시인은 야생적인 상상력으로 혁명적인 진화를 꿈꾸는군요.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일까요?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두 삶을 사는 사람. 세상은 조금도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내 몸을 상상력으로 변형시켜서라도 나를 억압하는 모든 일과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사람. 2010.6.14 문학집배원 김기택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무엇엔가 걸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더보기
[시배달]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낭송 김사인) 가난을 한갓 남루로 만드는 기품 있고 충만한 옛 시간들. 지나고 나야만 진정한 가치가 슬그머니 드러나는 옛것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버린 것들. 이제는 기억과 감각과 정서에 기생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드러나는 것들. 아무리 생생하게 재생해도 거품처럼 금방 꺼지는 것들. 이 보잘 것 없고 누추해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풍요를 누리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김수영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추억은 위로와 평안을 주지만, 때로는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 -2010. 6. 7 문학집배원 김기택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낭송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