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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을 동경한 적은 있죠. 욕망의 근원인 몸을 고통으로 단련시키거나 모든 욕망을 놓아버리는 수행을 통해 흔들림 없는 평안을 찾고도 싶었죠. 그런데 폐로 흡수한 빗물로 에너지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독립영양인간'이라니! 이 시인은 야생적인 상상력으로 혁명적인 진화를 꿈꾸는군요.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일까요? 그러나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며 두 삶을 사는 사람. 세상은 조금도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내 몸을 상상력으로 변형시켜서라도 나를 억압하는 모든 일과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사람.


2010.6.14   문학집배원 김기택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낭송 문혜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무엇엔가 걸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최신 셔츠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머리를 빗어 넘기지 않아도 좋으리라
먹고 살기 위해 뼈 빠지는 일은 유머가 될 것이며
흐느적거리는 새로운 인간들 때문에
분류학자는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붉나무 아래
도마뱀 한 마리
앞다리가 뒷다리를 따를 수 없고
몸통이 머리를 가눌 수 없는
눈이 삼백육십 도 돌아가는 대관람차 안구
폐로 흡수한 수분으로 영양분을 직접 얻는
독립영양인간


혀는 퇴화해
인생을 말로 때우지 않아도 될 것이며
죽을똥 살았다는 뻔한 성공기는 농담이 될 것이다
해변에서 밀려난 산호처럼 말라 가
대지에 뿌리를 두지 않는
꼬리겨우살이
몰락한 공산당 기관지가 지어낸
허풍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나는 폐로 빗물을 흡수해
에너지로 바꾸는
독립영양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부작용은 맹독성 오존에 의한 면역결핍
어느 시대나 부작용은 있었으니까!




시·낭송_ 문혜진
197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질 나쁜 연애』『검은 표범 여인』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함.


출전_『검은 표범 여인』(민음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업 안내와 <문학집배원>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letter.munjang.or.kr)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