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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막스 피카르트, 「동물과 침묵」 중에서 (낭송 정인겸)



초등학교 때, 저희 반엔 반벙어리인 여자애가 있었어요. 동그스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이 소처럼 순해 보이는 아이였지요. 그애가 입을 열면, 어버버버... 채 말이 되지 못한 말이 덧없이 흩어졌어요. 그 애는 말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요. 그럴 때 그 아이의 눈에 스치던 무엇. 지금 생각하면, 말로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어린 동물의 눈빛이 아니었나 싶어요.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라는 문장을 첫머리에 담고 있는 이 책은 젊은 날 가뜩이나 할 말 없던 제 입을 더 무겁게 해주었죠. 침묵이 희귀해진 시대, 침묵에 대해 말하는 문장들을 읽다 문득 밖을 내다보니 나무들. 살랑이던 잎 다 버리고 가지만 남은 나무는 묵언 정진에 든 수행자 같군요. 

- 2010.11.25  문학집배원  이혜경


 

막스 피카르트, 「동물과 침묵」 중에서






동물의 침묵은 인간의 침묵과는 다르다. 인간의 침묵은 투명하고 밝다. 왜냐하면 인간의 침묵은 어느 순간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을 솟아나게 하고, 어느 순간에는 그 말을 다시 자기 자신 속으로 흡수하면서 말과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에 의해서 움직여지며 말을 불러 일으키는 풍요한 침묵이다. 인간의 침묵은 낮의 빛에 의해서 환히 밝혀지는 북극지방의 백야와 같다.
그와는 달리 동물은 어떤 무거운 침묵을 가지고 있다. 동물 내부의 침묵은 돌덩어리처럼 화석화되어 있다. 동물은 그 침묵의 돌덩어리의 부당함을 부르짖고 그 난폭함으로써 그 돌덩어리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에 꼭 묶여 있다.
동물 내부의 침묵은 고립되고, 그 때문에 동물은 고독하다.
동물의 침묵은 마치 물건처럼 만져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침묵은 동물의 외양으로까지 파고 든다. 그리고 동물이 구제받지 못하는 것은 동물이 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물 자체 속의 침묵이 구제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굳어진 응고된 침묵이다.
물론 까마귀는 까옥거리고 개는 짖고 사자는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동물들의 목소리는 다만 침묵에 생긴 틈처럼 보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동물이 자신의 육체적 힘으로 침묵을 찢어 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는 오늘날에도 천지창조가 시작될 때 짖던 것처럼 짖는다.”(야콥 그림) 개들의 울부짖음이 절망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은 침묵을 찢어 열고자 하는, 천지창조가 시작될 때부터 오늘날에까지 이어지는 헛된 노력이다. 그런데 천지창조의 침묵을 동물이 잡아뜯는다는 것, 그것이 인간을 언제나 새롭게 동요시킨다.
새들의 목소리는 다른 동물들의 목소리만큼 절망적이지는 않다. 마치 새들은 장난으로, 자신들의 노래 소리를 공처럼 침묵을 향해 던졌다가는 그 노래 소리가 침묵의 표면으로부터 다시 떨어질 때, 날면서 그것을 낚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 막스 피카르트
1888년 독일 쇼프하임에서 태어남. 본업은 의사였으며, 문화비판적 시각의 글을 다수 발표함. 지은 책으로 『인간의 얼굴(Das menschengesicht)』『신으로부터의 도주(Die Flucht vor Gott)』『우리 안의 히틀러(Hitler in uns selbst)』『침묵의 세계』 등이 있음.


낭독/ 정인겸 - 배우.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출전/ 『침묵의 세계』(까치)

음악/ 최창국

애니메이션/ 민경

프로듀서/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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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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