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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낭송 박후기)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이 감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해도 오히려 가지들이 제멋대로 까불고 흔들리면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네요. 연약한 실가지가 강한 댓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댓바람더러 더 세게 불라고 놀리면서 바람을 즐기고 있네요.
우듬지와 실뿌리 사이 ‘땅심’이 드나드는 이 놀랍고 자유로운 소통의 세계. 땅의 질서와 하늘의 조화가 한 그루 나무속에 완벽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를 축소시킨다면 바로 이 나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실뿌리는 땅의 중심에 닿아 있고 우듬지는 하늘의 무한한 넓이로 뻗어 있는 세계. 그래서 이 세상 생명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가 제 ‘깜냥껏’ 삶을 누리는 세계.


- 2010.12.13   문학집배원  김기택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대거나 휙휙 후리거나, 제 깜냥껏 한세상을 흔들거린다.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칠흑 땅 속의 그 중 깊이 뻗은 실뿌리의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듬지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것 하나라도 어떤 댓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가.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아왔느니.



시/ 고재종
1957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으며,『실천문학』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사람의 등불』『날랜 사랑』『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쪽빛 문장』등이 있다.

 

낭송/ 박후기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등이 있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함.


출전/『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시학사)

음악/ 교한

애니메이션/ 강성진

프로듀서/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업 안내와 <문학집배원>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letter.munjang.or.kr)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