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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20]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낭송 정인겸, 박유밀) 소설을 두고 ‘풍속의 역사’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모여 기록이 될 때 역사가 되는데 소설은 특히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담아냅니다. 소설의 한 문장이 당대 풍속의 예민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의 첫 대목이 바로 그런 상징적인 예입니다. ‘그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는 이 한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누가 남학생들에게 팔렸을지. 그걸 알았다면 비누 회사들이 이 소설가에게 감사장을 줬어야 했을겁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까지도. 2007. 1. 31. 문학집배원 성석제 강신재「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공선옥의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낭송 공선옥, 최일화, 박남희, 박지일)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보니 1998년 9월이군요. 어디 간들 덜 추운 데가 없던 시절에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들, 좀 따뜻해졌을까요? 여기서 얼마나 된다고, 여기나 거기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하군요. 비록 담배를 끊은 남자들은 많아졌지만(저부터도 그렇습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19.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공선옥 우리는 광주역에 내렸다. 온 세상은 때글때글 얼어 있다. 무등산은 검다. 속은 쓰라리다. 어디로 갈까. 사내가 내 손을 잡아 끈다. 나는 휘적휘적 그를 따라간다. “뭣 좀 먹을래?” “속이 쓰려.” 우리는 광주역 앞의 국밥집으로 간다. “많이 먹어.” 나는 많이 먹는다. “광주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새끼들 보러.. 더보기
[문장배달 Best20] 무라카미 하루키, 「1Q84」 中에서 (낭송 손경숙) l 2009.10.29 우리 집의 고양이 남매를 볼 때 문득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가 주는 존재감이랄까요. 나도 고독한데, 고독한 고양이까지 함께 살고 있다… 이 기분 아시겠어요? 고양이들이 고독하지 않게 제가 돌봐주면 되지 않냐구요? 다마루라면 그럴 수 있겠죠. 타자(他者)를 자기 동일시하여 자신의 고독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 하나의 고독만으로도 허덕이는’ 아오야마 같은, 그리고 저 같은 인간은 그럴 수 없답니다. 아유미는 어떤가요. 가족도 동료도 있지만 그걸로는 고독을 해결할 수 없어 하룻밤의 남자를 찾아다닙니다. 아오야마, 다마루, 아유미… 우리가 고독 혹은 타자(他者)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1971년 자기들이 수출한 것이 고독이란 걸 알면 이탈.. 더보기
[문장배달] 가브리엘 루아, 「찬물 속의 송어」 중에서 (낭송 윤미애) 육 년 전, 제게 ‘장난꾸러기’라는 별명을 붙여준 어떤 아이와 헤어진 적이 있어요. 올해 여름, 다시 만난 그 애와 그 애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했어요. 제 마음속에 있는 그 애는 호기심이 그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여섯 살 배기 꼬마인데, 제 손을 잡고 걷는 그애는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어른들의 슬픔을 이해하기 시작한 소녀였어요. 아이의 꺼풀을 벗는 아이를 지켜보자니, 가슴이 저릿했어요.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여교사가 초등학교 부임했어요. 열여덟 살, 아이와 어른의 중간쯤에 걸친 나이지요. 학급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던 아이 메데릭이 그 여선생님을 사랑하네요. 아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그 한순간을 보게 된 여교사의 마음이 절절하네요. 2010.10.14 문학집배원 이혜경 가브리엘 루아, 「..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를 확률이 많죠. 하지만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말을 잘 못한다면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꽃을 보면 지금은 세상에 없는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그 사람과 그저 한없이 얘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얘기하세요. 2009. 4. 2. 문학집배원 김연수.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그렇게 바쁠 것도 없소..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서 쓰지 말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는 봄이면 시간을 내어서 어떤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은 어땠는지, 그 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세요. 강의 끝. 2009. 4. 16. 문학집배원 김연수.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마지막 날, 로사 누나와 나는 경기여고에서..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흥부전,「놀부 심술보」 (낭송 최석규) 심술을 부리는 법이 지금과는 차이가 있군요. 지금은 ‘옹기 장사 작대 치기’는 시도해 보려고 해도(어떤 판소리 대본에는 “옹기 짐 받쳐놓으면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찾아가서 작대기 걷어차기”로 자세히 되어 있습니다만) 옹기를 지게에 얹어 다니고 다니는 장수를 볼 수가 없으니까요. 어찌됐든 심술이 그 시대를 담는 살아 있는 액자 가운데 하나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것으로. 어찌 보면 놀부 심술은 귀여운 데가 있는데 그게 흘러간 것이고 이야기 속에 있어 멀게 느껴져서 그렇까요. 참고 하기 위해 읽던 판소리 대본에서 ‘물통 이고 오는 부인 귀 잡고 입 맞추기’에서는 아련한 향수마저 느꼈습니다. 물론 ‘물통을 이고 오는 부인’까지만. 2008. 3. 27. 문학집배원 성석제 흥..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황순원,「별」 (낭송 이경선, 윤상화) 어째서 세상의 착한 누이들은 처녀 때 자신을 좋아하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작달막한 키에 얼굴이 검푸르고 부잣집 막내 아들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일까요. 어째서 누이가 시집 가는 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남동생은 누이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는 것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라고 말하려다 보니 지금은 시집을 가기보다는 결혼을 하는군요. 동생들은 양복을 하나씩 얻어입고 ‘웨딩타운’ 인근의 식당에서 하객 접대를 할 것 같고요. 누이는 ‘전처럼’ 가마를 타고 시집가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은 여전히 있습니다. 당나귀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요. 겨울 밤하늘에서는 유난히 별이 잘 보인다지요. 별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2007. 12. 6. 문학집배원 성석제 황..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이문구,「우리 동네 김씨」 (낭송 양말복, 최경원) 가능한 한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천천히 듣고 천천히 씹으십시오. 사투리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뜻을 다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말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샅길 한구석에 조용히 피어 있는 민들레 같은, 동네 입구에 수굿이 서 있는 가래나무 같은 이런 한 대목이 우리 문학을 깊게 하고 힘있게 합니다. 굳이 외국의 문학과 견주어 잘났다 못났다 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문학은 국민(한 언어권에 속한 모든 사람이니 어민이라고 할까요) 모두의 자산입니다. 이런 문학을 가진 어민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2007. 5. 17 문학집배원 성석제 이문구,「우리 동네 김씨」 (낭송 양말복, 최경원) 대강 정돈이 된 듯하자 면직원은 부면장을 돌아다보았다. 매양 그랬듯이 부면장은 뒤에서 서서 잇긋도..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윤후명,「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낭송 이영석) 뼈만 남은 물고기는 어디로 갔을까요? 혹시 친구들이 알아봐 주었을까요? 친구들은 동정을 했을까요, 낙담을 숨겼을까요, 어이없어 했을까요, 웃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라는 말을 한 마디로 하자면? ………………………… 이 소설의 앞부분에 정답이 있습니다. 집어쳐! 2008. 4. 10 문학집배원 성석제 윤후명,「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낭송 이영석) 그다음 과제는 그림 보고 느낌 말하기였다. 의사는 가방 속에서 다른 책자를 꺼내 이쪽저쪽 펼쳐보였다. 그것은 아무런 구체적 형상도 아닌 부정형의 형상으로서, 말하자면 제멋대로 된, 그림 아닌 그림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의사 역시 이건 정답은 없는 거라고 안심을 주기도 했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