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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가브리엘 루아, 「찬물 속의 송어」 중에서 (낭송 윤미애)



육 년 전, 제게 ‘장난꾸러기’라는 별명을 붙여준 어떤 아이와 헤어진 적이 있어요. 올해 여름, 다시 만난 그 애와 그 애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했어요. 제 마음속에 있는 그 애는  호기심이 그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여섯 살 배기 꼬마인데, 제 손을 잡고 걷는 그애는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어른들의 슬픔을 이해하기 시작한 소녀였어요. 아이의 꺼풀을 벗는 아이를 지켜보자니, 가슴이 저릿했어요.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여교사가 초등학교 부임했어요. 열여덟 살, 아이와 어른의 중간쯤에 걸친 나이지요. 학급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던 아이 메데릭이 그 여선생님을 사랑하네요. 아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그 한순간을 보게 된 여교사의 마음이 절절하네요.

2010.10.14 문학집배원 이혜경





가브리엘 루아, 「찬물 속의 송어」 중에서  (낭송 윤미애)


 



메데릭보다 그의 그림자가 먼저 교실의 문턱에 이르렀고, 그 다음에 메데릭 자신이 여러 날, 또 여러 날 동안 자신의 갈 길을 찾아 헤맨 저 골똘한 눈빛을 가진 길쭉하고 젊은 애어른의 모습으로 문틀 속에 들어섰다. 내 눈에 그는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는 수 없이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입의 윤곽, 두터워진 입술-아랫입술 위의 그 그림자는 어디로 갔는가?-은 그의 용모를 완전히 바꾸어놓고 있었다. 얼굴 아래쪽은 이제 어딘가 로드리그와 닮은 점이 뚜렷했다. 그러나 부드럽고 쓸쓸하고 아득한 몽상 속에 잠긴 듯한 두 눈은 어쩌면 그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을 순진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아직까지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제압하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맞물려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무래도 함께 보조를 맞추고 갈 것 같지 않은 그 둘에 대해서 똑같이 마음 아파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메데릭은 나에게도 그의 학우들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미끄러지듯 제 책상으로 가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서랍 밑으로 다리를 뻗을 자리가 충분치 않았다. 나는 정다운 말로 그를 맞아주고 싶었지만 그토록 변한 그의 모습에 질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기 위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업을 계속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한순간 가운데 통로를 지나가다가 나는 그의 책상 옆에 발걸음을 멈추고 수업을 따라가도록 노력하라고 일렀다. 그는 지적한 페이지를 순순히 열었지만 그뿐,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상상을 따라 지난 날의 여행 속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정된 말뚝에 비끄러매이듯 그 자신에게 매인 것 같았다.



작가/ 가브리엘 루아
1909년 캐나다 마니토바주에서 태어남. 지은 책으로 『싸구려 행복』『내 생애의 아이들』『비밀의 산』『알타몽의 길』『휴식 없는 강』『즐거운 여름』 『세상 끝의 정원』『지상의 여린 빛』『무엇 때문에 고민하나, 에블린』 등이 있음. 페미나 상, 캐나다 총독상 등을 수상함.

낭독/ 윤미애
배우. ‘12월 이야기’ ‘늦게 배운 피아노’ 등 출연.


출전/ 『내 생애의 아이들』(현대문학)
음악/ 김권환
애니메이션/ 강성진
프로듀서/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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