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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20] 공선옥의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낭송 공선옥, 최일화, 박남희, 박지일)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보니 1998년 9월이군요. 어디 간들 덜 추운 데가 없던 시절에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들, 좀 따뜻해졌을까요? 여기서 얼마나 된다고, 여기나 거기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하군요. 비록 담배를 끊은 남자들은 많아졌지만(저부터도 그렇습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19.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공선옥

 



  우리는 광주역에 내렸다. 온 세상은 때글때글 얼어 있다. 무등산은 검다. 속은 쓰라리다. 어디로 갈까. 사내가 내 손을 잡아 끈다. 나는 휘적휘적 그를 따라간다.
  “뭣 좀 먹을래?”
  “속이 쓰려.”
  우리는 광주역 앞의 국밥집으로 간다.
 “많이 먹어.”
  나는 많이 먹는다.
  “광주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새끼들 보러.”
  “웃기지 말어.”
  그는 내 말을 묵살한다.
  “내가 웃겼어요?”
  “너 같은 여자가 무슨 새끼는 새끼.”
  “내가 왜?”
  “무슨 애기 엄마가 술 먹고 담배를 피워?”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애기엄마는 절대로 술 먹고 담배 피우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절대로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고 건강한 새끼들 많이 낳고 평화롭게 살아봤으면. 그렇지만 나는 ‘우리 새끼’들의 엄마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다.
  “시답잖은 소리 말고 다 먹고 다시 기차 타고 정읍에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하러 가자.”
  나는 내 앞으로 검은 휘장이 내려뜨려지는 것을 본다. 한판의 연극은 끝났다. 나는 이제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총총히 일어난다.
  “가버리면 안돼.”
  가슴이 싸하니 아파오는 듯도 하다. 나는 냅다 뛴다. 택시를 탄다.
  “무등산 밑에 시립 아동일시보호소로 갑시다.”
  “어이구 추워. 뭔 놈의 날씨가 요렇게 추운지 모르겄네. 화끈허게 눈이나 와불던지. 서울서 오시요?”
  “아니요. 정읍에서요.”
  “그래라우이. 정읍은 어쩝디여?”
  “정읍이요? 정읍은 따뜻하던데요. 봄날씨같이.”
  “그래부러라우이. 겁나게 희한허시. 정읍이 여그서 얼매나 된다고? 여그나 거그나 별반 차이 없을 것인디.”
  “그건 그래요.”
  그건 그럴 것이다. 어디 간들 덜 추울 것인가, 이 엄동설한에. 그래도 내 자식 있는 곳이 그중 따술 것인데.
  “아저씨, 빨리 좀 갑시다.”
  나는 이제 추운 것도 잊어버렸다. 아침놀이 무등산 위로 퍼지고 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어 문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에 내 온 얼굴을 내맡긴다.
  “아침부터 겁나게 재수없그만이.”
기사의 욕도 온 얼굴에 맞는다. 나는 담배를 깊숙이, 양껏, 힘차게 빨아당긴다.

 

 

출전/ 내 생의 알리바이』, 창비 1998

 

작가/ 공선옥
1963년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나 1991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을 발표하여 등단. 작품으로『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피어라 수선화』『모정의 그늘』『수수밭으로 오세요』등이 있음. 신동엽창작기금,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부문), 올해의 예술상 문학부문을 수상함.

 

낭독/
공선옥

최일화 - 배우. 영화 <우아한 세계> <한반도>, TV <히트> <패션70s>, 연극 <삼류배우> <서안화차> 등에 출연.

박남희 - 배우.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날보러 와요> <김치국씨 환장했네> <한씨 연대기> 등에 출연.

박지일- 배우. 연극 <죄와 벌> <보이체크> <서안화차> <물고기 남자> 등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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