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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손택수, 「스프링」 (낭송 권지숙)



스프링. 몸을 배배 꼬며 웅크렸다가 일시에 반동을 이용하여 솟구치는 힘. 제 몸보다 크고 무거운 수레를 끌려면, 제 몸무게보다 훨씬 큰 삶의 짐을 감당하려면, 스프링의 탄력을 위해 먼저 제 몸을 움츠려야 하지요. 수레 끄는 사내와 미는 여자가 비틀려 흉한 모습이 된 이유는 제 안의 반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을 한껏 웅크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몹시 힘들고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스프링이 한껏 움츠린 상태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무능하거나 보잘것없는 것 같이 보인다면 자신의 스프링을 최대한 움츠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스프링의 놀라운 탄력이 감춰져 있습니다.


2010.10.04   문학집배원  김기택



손택수, 「스프링」  (낭송 권지숙)



<flash>




스프링


손택수



사내가 수레를 끌고 언덕바지를 오른다 사내의 비틀린 몸은 땀방울을 쥐어짜고 있다
 
수박이 실린 수레 뒤에서 배가 불룩해진 여자가 끄응끙 수레를 따른다 한쪽 손으로는 무거운 배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수레를 밀면서
 
지난봄 사내의 넝쿨 끝엔 딸기와 외가 열렸었다 상하기 시작한 딸기를 자주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었다
 
소아마비 뒤틀리는 사내의 몸속 구비치는 무늬가 길을 휘감고 오른다 만삭이 된 수박 수레바퀴를 돌린다
 
저 고행 끝에 가을이면 꼬투리가 터지리라 단단한 꼬투리 뒤틀어지는 힘으로 씨앗들이 톡 톡 터져 나오리라
 
머리가 짓눌릴 때마다 볼펜을 똑딱거리며 바라보는 사무실 창밖 배배 튼 길이 꼭 볼펜 속 스프링 같다 꾸욱 짓눌리는 힘으로 따악 소리를 내며 튕겨오르는 스프링,
 
날아갈 수 없는 허리와 목을 비틀며 기지개를 켠다 언덕 위의 꼬부라진 골목길 넝쿨넝쿨 뻗어간 몸에 맺힌 만삭 한 덩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인_ 손택수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나무의 수사학』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_ 권지숙 - 배우. 연극 <루나자에서 춤을>, <기묘여행> 등 출연.

출전_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음악
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문학집배원> 사업은 문학과 멀어진 국민들이 우리 문학의 향기를 더욱 가깝게 느끼며 문학적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자들이 문학을 좀더 쉽고 가깝게 만나고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입니다.


지난 2006년 5월 8일 도종환의 시배달로 시작하여, 현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주2회) 신청하신 분의 이메일로 시와 문장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업 안내와 <문학집배원>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홈페이지(letter.munjang.or.kr)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