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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시 배달

[시배달] 박형준, 「사랑」 (낭송 이진선)



안타깝게도 이 '사랑'은 추억과 상상 속에서만 활발하군요. 헤엄치는 오리떼를 보면서 시인은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오리처럼 힘차게 날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지 '하고 싶다'는 말 속에만 있습니다. 현실에서 시인은 사랑을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일 뿐이며, 그래서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해"처럼 우울합니다.
그러나 짝사랑에도 장점은 있어요. 연애 비용이 들지 않아 경제적입니다. 쉽게 변질되지 않아 순수성이 오래 유지됩니다. 상상만 하면 바로 현실이 되니까 실패 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는 짝사랑과 공통점이 참 많네요.


2010.09.27   문학집배원  김기택




사랑」  (낭송 이진선)





<flash>






사랑



박형준



오리떼가 헤엄치고 있다.
그녀의 맨발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홍조가 도는 그녀의 맨발,
실뱀이 호수를 건너듯 간질여주고 싶다.
날개를 접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떼.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저녁해.

우리는 풀밭에 앉아 있다.
산너머로 뒤늦게 날아온 한떼의 오리들이
붉게 물든 날개를 호수에 처박았다.
들풀보다 낮게 흔들리는 그녀의 맨발,
두 다리를 맞부딪치면
새처럼 날아갈 것 같기만 한.


해가 지는 속도보다 빨리
어둠이 깔리는 풀밭.
벗은 맨발을 하늘에 띄우고 흔들리는 흰 풀꽃들,
나는 가만히 어둠속에서 날개를 퍼득여
오리처럼 한번 힘차게 날아보고 싶다.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
오래 전에
나는 그녀의 눈 속에
힘겹게 떠 있었으나.



 


시_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춤』 등이 있음. 동서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_ 이진선(배우)

   <세일즈맨의 죽음> <눈먼 자들의 도시> 등 출연.


플래시_ 강성진


음악_
최창국

연출_ 김태형


출전_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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