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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배달] 정철훈,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낭송 정철훈) 러시아어 '주라블리'는 우리말로 '백학'.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죠. 남저음 목소리가 아름답고 낭만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들 잃은 어머니들의 가슴과 눈에서 고통의 진액을 뽑아내는 슬픈 노래였군요. 아기는 한순간이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죠. 그때 아기와 엄마는 팔다리처럼 붙어 잘라낼 수 없는 한 몸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는 몸과 팔다리처럼 붙어 떼어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는 건 그 사람과 사랑으로 연결된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이죠. 한국전쟁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아직도 숨은 쉬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많은 어머니들을 통해 이 비극은.. 더보기
[문화나누미] 문학나눔_문학집배원 / 김기택 시인 인터뷰 [문학나눔] 문학나눔_문학집배원/ 김기택 시인 인터뷰 장소: 대학로 스타벅스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나눔부 시간: 9월.30일(목) 저녁 7시 9월 30일.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유독 9월이 휘리릭 지나갔다고 생각하시나요? 숨가쁘게 달려온 한 달이었지만, 9월의 마지막 날만큼은 무척 의미 있는 인터뷰를 하면서 마무리 했기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제게 시인 김기택 선생님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여러분도 그 이유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인터뷰 들어갑니다. 1. 김기택 시인 인터뷰 이수진: 문학집배원이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김기택 시인: 매 주 시를 한 편식 선정하고 해설을 합니.. 더보기
[시배달]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이름과 이름 뒤에 붙은 온갖 계급장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만, 그것이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죠. 당장 급한 밥벌이 문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것만도 벅차서, '나'와 '내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 건 먹고 사는 일을 처리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한가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 질문이 없는 동안은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도 한없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때 이 질문은 느닷없이 기습하여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2010.06.21 문학집배원 김기택 김광규. 「나」 (낭송 박은숙)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 더보기
[시배달]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낭송 김사인) 가난을 한갓 남루로 만드는 기품 있고 충만한 옛 시간들. 지나고 나야만 진정한 가치가 슬그머니 드러나는 옛것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버린 것들. 이제는 기억과 감각과 정서에 기생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씩 드러나는 것들. 아무리 생생하게 재생해도 거품처럼 금방 꺼지는 것들. 이 보잘 것 없고 누추해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풍요를 누리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김수영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추억은 위로와 평안을 주지만, 때로는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 -2010. 6. 7 문학집배원 김기택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낭송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더보기
[시배달] 이면우, 「거미」(낭송 이준식) 거미가 잠자리 잡아먹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거미는 잔인하게 보이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잠자리는 불쌍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시야로 보면 약육강식도 하나의 생태계이고, 이 질서가 자연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우리 몸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른 몸을 죽이고 먹어서 힘이 생겨야 남을 살리는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잠자리의 발버둥과 꿈틀거림과 두려움을 먹는 한 마리 거미를 보며 이 기막힌 모순을 헤아립니다. 그리고 이 불가해한 운명을 필사적으로 따르는 거미의 삶에서 한 생명체의 ‘외로움’을 봅니다. 지독한 외로움이죠. 2010.10.18 문학집배원 김기택 이면우, 「거미」(낭송 이준식)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 더보기
[시배달] 이현승,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낭송 이현승) 지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자살골을 넣은 한 외국 선수는 한동안 웃고 있더군요. 웃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꽂히는 수억 개의 시선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두려워 떠는 웃음, 슬픈 웃음, 눈치 보는 웃음, 절망적인 웃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웃음은 증오와 절망과 치욕과 분노를 가려주는 효과적인 가면입니다. 당장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침을 막아줄 수도 있습니다(웃는 낯에 침 뱉으랴!). 내 안의 욕망이 시키는 것을 얻으려면, 견디기 힘든 삶에 아부하려면, 이런 웃음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간지럼증처럼 참을 수 없는 웃음, 눈과 주름과 피부와 세포까지 모두 웃는 본능적인 웃음 속에는 삶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오랜 진화의 지혜가 감춰져 있을 것입니다. 웃음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나’가 들어있.. 더보기
[인터뷰] 문학집배원 김기택 시인, 시와 음악과 그림이 어우러진 유쾌한 만남 더보기
[시배달] 김혜순, 「잘 익은 사과 」 (낭송 문지현) 크고 잘 익은 햇사과를 사각사각 깎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과에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천 년 동안 아가인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둥글게 둥글게 껍질 깎이는 자리가 자전거타고 상쾌하게 지나가는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 같지 않나요? 시는 말로 되어 있고, 그 말은 사물을 닮은 가짜이지만, 시인의 욕망은 독자에게 ‘사과’라는 말이 아니라 진짜 사과를 주는 것. 그러므로 이 시를 즐기려면 사과라는 '말'을 버리고, 눈과 코와 귀의 감각을 최대한 확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둥글게 깎이는 작은 사과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로 바뀌는 마술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0... 더보기
[시배달] 문정희, 「흙」 (낭송 문정희) 흙에서 어떻게 울음소리가 들릴까요? 내주기만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흙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열매와 짐승과 사람에게 다 퍼주고도 밟히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똥오줌을 받아내 제 안에서 삭히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흙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이 시인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흙이라는 이름에서 “흙 흙 흙” 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눈물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겁니다. 제 몸의 양분과 정기를 씨앗에게 부어 아이를 낳고, 제 몸과 영혼을 팔아 아이를 기르고도, 받을 것은 거의 없고 줄 것은 많이 남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2010. 5. 3. 문학집배원 김기택 문정희, 「흙」 (낭송 문정희) 흙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 더보기
[시배달] 마종기, 「내 동생의 손」 (낭송 김미정) 몸과 마음으로 처리할 수 없는 가족의 죽음을 견뎌야 할 때, 슬픔은 난폭합니다. 일 한다고 사람 만난다고 봐주지 않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려 망신시키죠. 그 슬픔의 폭력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시인은 고인의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겠답니다. 어떻게 죽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죠? 형의 손바닥에는 동생의 손에 대한 수많은, 생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손에는 체온과 웃음과 눈물과 형제애가 가득 달려 있겠죠. 이 촉각의 기억으로 죽은 손을 되살리는 겁니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면, 그때마다 죽은 동생이 살아나 오히려 형을 위로할 것입니다. 2010.5.10 문학집배원 김기택 마종기, 「내 동생의 손」 (낭송 김미정) 내 동생의 손 마종기 생시에도 부드럽게 정이 가던 손, 늙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