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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사업/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2010년 4분기, 시 부문 : 「아픈 천국」, 「뺨에 서쪽을 빛내다」등 7편 선정




아픈 천국

이영광 지음
(주)창비 (경기) | 2010년 8월 30일 출간

선정평
이영광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은 남성적 발성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영광 시인의 시는 요즘 우리 시의 한 아쉬움이기도 한 유약한 여성적 어조와 서정으로부터 좀 떨어진 거리에 있다. 물론 그의 시도 비련의 사랑을 노래하거나 죽음을 처연하게 바라볼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특유의 몸이 탄탄한 사내의 육성을 빌어 사회정치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시를 쓰면서 사나워졌습니다 / 타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단언하는 그는 시를 통해 불치의 이 시대를 매섭게 호통치고,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을 위무한다.




 




뺨에 서쪽을 빛내다

장석남 지음
(주)창비 (경기) | 2010년 8월 20일 출간

선정평
섬세한 감성의 비경을 보여주는 시집. 장석남은 이번 시집에서 좀 더 일상 속에 깊이 감정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삶에 대한 성찰의 눈길을 다채롭게 열고 있다. 그의 시는 반성 위에 지어진 감성의 집이다. 그 반성은 삶의 진정성과 힘든 버팀을 받쳐주는 연민의 기둥이며 삶이 새롭게 거듭나게 만드는 약이다. 아울러 감정과 감정, 또는 감정과 현실을 반죽해서 밝은 세계를 드러내는 솜씨가 아주 익어 있다.


 




다산의 처녀

문정희 지음
(주)민음사 (서울) | 2010년 9월 27일 출간

선정평
문정희의 이번 시집은 여성성의 내밀하고도 함축적 있는 담론을 더욱 밀도 있게 밀고나가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어렵지 않는 말로 이야기하지만(그의 시는 이야기성이 강하다!), 그 말은 다산과 생명성을 내포함으로써, 강렬한 기운을 함양한다. 그 힘은 ‘분별 대신 향기’(‘늙은 꽃)를 고집하는 영원한 젊음의 열정에서 나온다. 그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돌 때 우리는 그의 언어를 여신의 말처럼 받아들이면서 갈망에 젖게 된다.






저녁

송기원 지음
실천문학사 (서울) | 2010년 8월 20일 출간

선정평

뜨거운 태양이 지고, 격정의 시간도 지나고, 조금씩 어둑해지는 저녁. 행복한 피로감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이 시집이 그러하다. 하루의 무게를 비워내고, 욕심을 비워내면서 가벼움의 충만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들이다. 이 시집엔 비움, 떠남, 죽음 등에 생각이 짙게 드리워있다. 그것은 깊은 성찰이다. 시들은 길지 않다. 짧은 몇 줄에서 만나는 시인의 사색이 매력적이다. 시를 읽는 내내 ‘불교적’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맴돌았다. 이 시집엔 불교적인 것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의 심장을 받았네

길상호 지음
실천문학사 (서울) | 2010년 9월 27일 출간 

선정평
시인은 푸르고 넓은 귀를 가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세세한 존재들의 말을 최대한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서늘한 관찰의 시선이 있지만, 또한 감정이 실려 있다. 따뜻함이라는 평범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어려운 것, 습관이나 위선이 아닌 진실하고 뜨거운 감정. ‘어둠도 잠이 든 밤’ 모두가 잊고 있는 것들을 챙겨 시인은 그것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천천히, 듣는 귀를 활짝 열어두고.






찔러본다

최영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서울) | 2010년 8월 26일 출간

선정평
제목부터 흥미로운 시집이다. 여기서 ‘찔러본다’는 일종의 교감이고 확인이다. 누군가의 만남의 과정이면서 스스로 삶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연과 만나고 이웃과 만나고, 침묵과 만나고 현실과 만난다. 그것을 ‘찔러본다는 것’과 연결시킨 사유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시 한 편 한 편 모두 그리 어렵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시를 너무 다듬지 않고 모난 데를 적당히 슬쩍 남겨두면서 거기에 시인의 생각을 툭툭 담아냈다는 점이 더더욱 매력적이다.





 




지도에 없는 집

곽효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서울) | 2010년 8월 20일 출간

선정평
곽효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은 길 위의 시편들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열하기행’ 연작이 그렇거니와 고원 도시, 라이프치히의 교회, 하디사의 작은 마을, 황토고원 등등 그의 시는 많은 장소들을 호명한다. 이것은 대단히 입체적인 심상의 지리학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는 그곳들에서 “무리지어 들풀처럼” 사는 사람들(세계인들)의 수난곡을 가만히 듣는다. 생명의 경이나 사랑의 감정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노래할 때에도 그의 시는 빛나는 감각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의 시적 관심이 기억과 소멸에도 닿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