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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사업/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2010년 4분기, 소설 부문 : 「굿바이, 수라바야」,「내 정원의 붉은 열매」 등 6편 선정






굿바이, 수라바야


백시종 지음
계간문예 (서울) | 2010년 7월 20일 출간

선정평

이 소설집에 실린 7편의 소설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번개가 아닐까. 번개가 치면 섬광이 번득이고 순식간에 사위가 밝아지며 그때 언뜻 생의 비밀이 엿보이기도 한다. 문장은 동사들의 집합이라고 여겨질 만큼 재빠르며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적도의 밀림과 유년의 섬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싶으면 어느새 알제리에서 파나마까지 파고든 구차한 삶의 다양한 형상이 속속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메마르고 팍팍한 삶의 편린들을 강물에 적셨다가 꺼낸 듯 눈부시게 빛나는 새로운 삶으로 그려낸 이 소설집에서는 근래 들어 보기 드문 확고한 작가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파주) | 2010년 7월 21일 출간

선정평

‘누군가 그대 앞에 찻잔이든 술잔이든 빈 잔을 내려놓는다면 경계하라. 그것은 처음에는 온화하고 예의바른 권유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그대에 대한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지배로 돌변할 수도 있으니.’ 그러므로 타인에 의해 우리 앞에 놓인 빈 찻잔처럼 예의바름 뒤에 감춰진 난폭한 지배의지는 오늘날 관계의 근본적인 층위가 어디에서 생성되는지를 증명해준다. 숨겨진 의도는 항상 무심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뒤늦은 깨달음은 과거의 의미를 송두리째 뒤바꾼다. 이토록 잔인하고도 섬세한 이야기들을 권여선이 아니라면 누가 직조해낼 수 있었을까. 이 소설집에 실린 7편의 소설 가운데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즐거운 읍내


최용탁 지음
삶이보이는창 (서울) | 2010년 9월 27일 출간 

선정평


언제부턴가 민중의 미시사를 다룬 민중서사가 한국소설에서는 희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소설을 펼치는 순간 어느 달변가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 난 바로 그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처럼 흥성대는 조백술 일가(一家)에 투영된 삶은 근대화의 언저리 즉 시대의 중심부로 진입하지는 못한 채 과잉욕망들의 배설구로 전락해버린 공간을 상징하는 ‘읍내’의 삶이기도 하다. 그런 삶이 즐거울 리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농익은 솜씨로 우리 시대의 희비극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씁쓸함은 작가가 정교한 방식으로 숨겨놓았던 소설적 진실임이 틀림없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조용호 지음
문이당 (서울) | 2010년 7월 10일 출간 

선정평

노래를 사랑했던 젊은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엇갈린 운명을 짊어진 채 어디에서 다시 해후하게 될까. 빈산, 생에 감사드리며, 베인테 아뇨스, 오월의 노래, 오동동 타령, 진도 아리랑, 타향살이, 추억의 소야곡,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등, 동양과 서양의 구분없이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숱한 노래들이 갈피마다 들려온다. 노래로 사고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는 삶이다. 그 단순한 진리가 한 사람에게는 생의 진리다. 울고 싶으면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 웃고 싶어도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 그들이 한 생을 견디는 방식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생을 견딘다는 사실을 은유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러므로 기타는 말한다. ‘인간들은 죽은 신들이지.’

 









스윙바이


유형수 지음
문학들 (광주) | 2010년 7월 8일 출간

선정평

신인의 첫 소설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의 손끝은 매섭기만 하다. 정갈하고 단아한 문장들은 제 자리를 잡고 앉아 스스로 발효하여 웅숭깊은 향기를 내뿜는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문장에서 이 작가가 얼마나 언어의 조탁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으며 사물을 보는 시선에서는 또한 얼마나 성숙한 세계관을 지녔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무기력한 현실과 대면한 인물들은 깊은 고통을 느끼지만 내색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마치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문 사람처럼 이 소설의 인물들은 전 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 위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묵묵히 견딘다. 스윙바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스치듯 지나쳐서 우주를 끝없이 항해하는 삶을 바라보는 저 도저한 패기.











이별하는 골짜기


임철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서울) | 2010년 8월 20일 출간 

선정평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별어곡’이라는 간이역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속 깊은 사연들이 시리도록 투명한 문장으로 풀려나온다. 시인을 꿈꾸는 청년 역무원을 비롯해 단 한 번의 실수로 평생 고통 받아야 했던 늙은 역무원이 지키는 간이역은 이제 사라졌다. 그러나 작가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견지하며 생의 의미를 독자에게 묻는다. 햇살조차 쉬이 머물지 못할 만큼 궁벽한 강원도 깊은 산골의 간이역은 잠깐씩 머물다 지나치는 말 그대로의 ‘간이역’에서 생이 머무는 공간으로 치환된다. 우리가 언젠가 한번쯤은 들렀을 그러나 잊고 말았을 그러나 또한 그것이 우리 생의 전부였을지도 모르는 기억으로서의 간이역을 뼈아프게 대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