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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20] 니콜 크라우스「사랑의 역사」 (낭송 서현철, 김기연, 이화룡)


어제 밤하늘을 보셨나요? 이틀 동안 천둥이 치며 비가 내렸고 기온은 떨어졌고 기분은 우울해졌는데, 어젯밤 하늘에는 밭이랑 같은 하얀 구름들이 줄지어 서 있었거든요. 그리고 반달이 떠 있었어요. 서울에서 친구가 일산까지 찾아왔기에 만나러 나가던 길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환하게 개는 밤하늘을 본 거예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중얼거렸어요. “야, 정말 멋진 밤하늘이야.” 이 며칠 우울했는데, 하지만 그걸 표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걸 금방 알아차리고 있었던 친구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제 괜찮아?” 걱정하는 친구 때문에 우울한 표정을 계속 지었지만, 사실 이미 달을 봤기 때문에, 또 내색하지 않고 두고봐주는 친구가, 그것도 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었지요. 다행히도 저 역시 점점 더 행복해지고 점점 더 슬퍼지고 있어요. 그건 정말 다행이죠.

 

2008년 6월 12일. 문학집배원 김연수.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버나드가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형이 어머니 유품 중에서 발견했어요. 근사한 사진이죠? 저 남자는 누군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물건을 많이 챙겨 오지 못했어요. 부모님과 누이들의 사진 두어 장이 전부죠. 물론 어머니는 다시는 못 볼 줄 몰랐기 때문에 많이 가져오지 않은 거죠. 그래도 이건 전혀 못 보던 건데 형이 어머니의 아파트 서랍에서 처음 찾아냈어요. 편지가 여럿 들어 있는 봉투 안에 같이 있었죠. 모두 이디시 말이었어요. 형은 슬로님에서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이 보낸 편지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어머니는 한 번도 누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거든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시겠죠?”

(“카메라가 있다면 매일 네 사진을 찍을 거야. 그러면 너의 인생에서 네가 매일 어떻게 보이는지 기억할 수 있잖아.”
“나는 늘 똑같은데.”
“아니, 달라. 넌 늘 변하고 있어. 매일 조금씩. 할 수 있다면 그걸 모두 기록하고 싶어.”
“네가 그렇게 잘 안다니 말인데, 오늘은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데?”
“너는 0.001밀리미터 정도 키가 더 컸어. 머리도 0.001밀리미터 정도 더 커졌어. 그리고 네 가슴은…….”
“아니야!”
“아니, 맞아!”
“아니야..”
“맞다니까..”
“또 뭔데? 이 돼지 같은 녀석아?”
“넌 아주 조금 행복해지고 또 아주 조금 슬퍼졌어.”
“그럼 행복과 슬픔이 상쇄해서 달라진 게 없겠네.”
“천만에. 오늘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해서 조금 더 슬퍼졌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넌 매일 둘 다 조금씩 더해져.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프다는 거지.”
“네가 어떻게 아는데?”
“생각해 봐. 지금 여기 풀밭에 누운 것보다 더 행복한 적이 있었어?”
“아니.”
“그럼 더 슬퍼본 적이 있었어?”
“아니.”
“너도 알겠지만, 다들 그런 건 아니야. 베일라 애쉬 같은 사람들은 매일 더 슬퍼져.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은 둘 다야.”
“넌 어떤데? 너도 지금이 평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슬퍼?”
“물론 나도 그렇지.”
“왜?”
“너보다 날 더 행복하게 하거나 더 슬프게 하는 건 없으니까.”)

 

출처/ 『사랑의 역사』, 민음사 2006

작가/ 니콜 크라우스 : 1974년 출생. 소설 『남자가 방으로 걸어 들어가다』『사랑의 역사』등이 있음.

 

낭독/ 
서현철 - 연극배우. 뮤지컬 <라디오스타>, 연극<나생문> <판타스틱스> <노이즈 오프> 등에 출연.
김기연 - 연극배우. 연극 <천국은 게임중> <카페신파>, 영화 <노랑버리> <몽정기> <음란한 사회> 등에 출연.
이화룡 - 연극배우. 연극 <노이즈오프> <날보러와요> <쉬어매드니스> 등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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