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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문장 배달

[문장배달 Best20] 박현욱의「아내가 결혼했다」 (낭송 박남희, 박지일)


이런 경우를 두고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 사랑이라는 게,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라고 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노래가 우리가 부르는 가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그대만을 기다린다느니, 사랑, 영원, 이런 맹세투의 말에는 헤어짐의 씨앗이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증오에 차서 서로를 저주하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노래는 물론이고 소설 주인공들 간의 대화도 참 리듬감이 있지요? 대화와 노래 사이의 문장에도 노래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건 사람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문학집배원 성석제. 2007. 7. 26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신혼여행이었다. 퀸스타운의 스카이라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늘은 일찍이 본 적 없는 환상적인 푸른색이었다. 수많은 폭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어우러진 밀포드 사운드도 별세계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녀였다. 가장 감동적인 정경은 내 옆에 그녀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로토루아에 갔을 때였다. 공연장에서 본 마오리 족의 전통 의상이나 춤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 마음을 울리는 곡조, 「연가」였다.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다.
  처음에는 우리 가사로.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나중에는 그들의 말로.
에 히네 에 호키 마이 라 카 마테 아하우 이 테아로하 에.

원곡의 가사 내용은 이러하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도
그대가 건너올 때면 잠잠해질 거예요.
그대, 내게 다시 돌아와요.
당신을 사랑해요.
편지를 썼어요. 반지와 함께 보냈지요.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그대, 다시 돌아오세요.
너무도 당신을 사랑해요.
내 사랑은 흔들리지 않아요.
뜨거운 태양도 내 사랑을 마르게 할 수 없어요.
내 사랑은 언제까지나 눈물로 젖어 있을 테니까요.

  낯선 나라에서의 밤. 하늘에선 별들이 반짝거렸고 땅 위에선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옆에는 이제 막 아내가 된 그녀가 내게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다. 바슐라르가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말한 건 이런 밤을 경험해 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따위가 아니라 이런 곳일 것이다. 꼭 이런 곳이어야 한다.
  “노래 참 좋다.”
  “응. 정말 아름다운 노래야.”
  “이게 마오리 노래였나 보네.”
  “남자 이름이 ‘토모아나’라고 했던가. 서른여덟의 나이에 열여덟 꽃다운 처녀 리페카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린 거야. 그 여자한테 지어보낸 노래래. 1912년의 일이라던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받고 가만히 있을 여자는 없을 거야. 결국 그 둘은 결혼했지.”
  “그런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었구나. 어쩐지 노래가 애절하더라니.”
  “그 후 두 사람은…….”
  잠시 사이를 두고 인아가 말을 이었다.
  “이혼했대.”

 

 

출전/ 『아내가 결혼했다』, 문이당 2006

 

작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1년『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 『동정없는 세상』『새는』『아내가 결혼했다』가 있으며,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함.

 

낭독/

박남희 - 배우.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날보러 와요> <김치국씨 환장했네> <한씨 연대기> 등에 출연.

박지일- 배우. 연극 <죄와 벌> <보이체크> <서안화차> <물고기 남자> 등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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