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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

[시배달]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경이로움」 (낭송 이문경) "이게 뭐야?" "왜?"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런 질문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가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이게 뭐야?" 하고 소리치기도 했죠. 어릴 때 그토록 많았던 호기심은 다 어디 갔을까요? 왜 지금은 세상과 일상이 당연하고 자명해 보일까요? 살면서 겪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와 체념이 궁금증을 앗아간 걸까요? 왜 질문은 줄고, 고정관념은 늘어갈까요? 나, 지금, 여기, 너, 밥 먹는 일, 바람 소리, 나를 보는 강아지의 궁금한 눈빛. 이 모든 평범한 것들이 감추고 있는 참을 수 없는 경이로움. 여기에 시가 솟구치는 원천이 있을 것입니다. 시는 그 빈틈을 급습하려 하지요. 2010.07.05 문학집배원 김기택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경이로움」 (낭송 이문경) 경이로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라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를 확률이 많죠. 하지만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말을 잘 못한다면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꽃을 보면 지금은 세상에 없는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그 사람과 그저 한없이 얘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얘기하세요. 2009. 4. 2. 문학집배원 김연수.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낭송 김내하, 홍성경, 임진순, 주성환) “그렇게 바쁠 것도 없소.. 더보기
[시배달] 이현승,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낭송 이현승) 지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자살골을 넣은 한 외국 선수는 한동안 웃고 있더군요. 웃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꽂히는 수억 개의 시선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두려워 떠는 웃음, 슬픈 웃음, 눈치 보는 웃음, 절망적인 웃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웃음은 증오와 절망과 치욕과 분노를 가려주는 효과적인 가면입니다. 당장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침을 막아줄 수도 있습니다(웃는 낯에 침 뱉으랴!). 내 안의 욕망이 시키는 것을 얻으려면, 견디기 힘든 삶에 아부하려면, 이런 웃음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간지럼증처럼 참을 수 없는 웃음, 눈과 주름과 피부와 세포까지 모두 웃는 본능적인 웃음 속에는 삶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오랜 진화의 지혜가 감춰져 있을 것입니다. 웃음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나’가 들어있..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서 쓰지 말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는 봄이면 시간을 내어서 어떤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은 어땠는지, 그 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세요. 강의 끝. 2009. 4. 16. 문학집배원 김연수. 황석영,「개밥바라기별」 (낭송 홍성경, 주성환) 마지막 날, 로사 누나와 나는 경기여고에서..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흥부전,「놀부 심술보」 (낭송 최석규) 심술을 부리는 법이 지금과는 차이가 있군요. 지금은 ‘옹기 장사 작대 치기’는 시도해 보려고 해도(어떤 판소리 대본에는 “옹기 짐 받쳐놓으면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찾아가서 작대기 걷어차기”로 자세히 되어 있습니다만) 옹기를 지게에 얹어 다니고 다니는 장수를 볼 수가 없으니까요. 어찌됐든 심술이 그 시대를 담는 살아 있는 액자 가운데 하나라는 건 알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것으로. 어찌 보면 놀부 심술은 귀여운 데가 있는데 그게 흘러간 것이고 이야기 속에 있어 멀게 느껴져서 그렇까요. 참고 하기 위해 읽던 판소리 대본에서 ‘물통 이고 오는 부인 귀 잡고 입 맞추기’에서는 아련한 향수마저 느꼈습니다. 물론 ‘물통을 이고 오는 부인’까지만. 2008. 3. 27. 문학집배원 성석제 흥..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황순원,「별」 (낭송 이경선, 윤상화) 어째서 세상의 착한 누이들은 처녀 때 자신을 좋아하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작달막한 키에 얼굴이 검푸르고 부잣집 막내 아들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일까요. 어째서 누이가 시집 가는 날,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남동생은 누이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몸을 숨기는 것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라고 말하려다 보니 지금은 시집을 가기보다는 결혼을 하는군요. 동생들은 양복을 하나씩 얻어입고 ‘웨딩타운’ 인근의 식당에서 하객 접대를 할 것 같고요. 누이는 ‘전처럼’ 가마를 타고 시집가지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은 여전히 있습니다. 당나귀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요. 겨울 밤하늘에서는 유난히 별이 잘 보인다지요. 별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2007. 12. 6. 문학집배원 성석제 황..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이문구,「우리 동네 김씨」 (낭송 양말복, 최경원) 가능한 한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천천히 듣고 천천히 씹으십시오. 사투리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뜻을 다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말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샅길 한구석에 조용히 피어 있는 민들레 같은, 동네 입구에 수굿이 서 있는 가래나무 같은 이런 한 대목이 우리 문학을 깊게 하고 힘있게 합니다. 굳이 외국의 문학과 견주어 잘났다 못났다 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합니다. 문학은 국민(한 언어권에 속한 모든 사람이니 어민이라고 할까요) 모두의 자산입니다. 이런 문학을 가진 어민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2007. 5. 17 문학집배원 성석제 이문구,「우리 동네 김씨」 (낭송 양말복, 최경원) 대강 정돈이 된 듯하자 면직원은 부면장을 돌아다보았다. 매양 그랬듯이 부면장은 뒤에서 서서 잇긋도..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윤후명,「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낭송 이영석) 뼈만 남은 물고기는 어디로 갔을까요? 혹시 친구들이 알아봐 주었을까요? 친구들은 동정을 했을까요, 낙담을 숨겼을까요, 어이없어 했을까요, 웃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라는 말을 한 마디로 하자면? ………………………… 이 소설의 앞부분에 정답이 있습니다. 집어쳐! 2008. 4. 10 문학집배원 성석제 윤후명,「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낭송 이영석) 그다음 과제는 그림 보고 느낌 말하기였다. 의사는 가방 속에서 다른 책자를 꺼내 이쪽저쪽 펼쳐보였다. 그것은 아무런 구체적 형상도 아닌 부정형의 형상으로서, 말하자면 제멋대로 된, 그림 아닌 그림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의사 역시 이건 정답은 없는 거라고 안심을 주기도 했던.. 더보기
[문장배달 Best 20] 파블로 네루다, 「추억」 (낭송 전국환)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기 전, 저는 서울 신림동의 헌책방에서 네루다의 자서전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그 자서전을 덮으면서 저는 이 시인이 제 인생에서 아궁이와 등대 속의 불꽃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치열하고 낙천적으로 살며 곳곳에 이야기를 만들어 뿌리고 또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방랑자로서. 그의 시는 더없이 매혹적이지만 저는 자서전의 저자로서 파블로 네루다를 더욱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 존경의 근원이 제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이야기꾼의 솜씨를 살짝 맛보십시오. 2008. 4. 17. 문학집배원 성석제 파블로 네루다, 「추억」 (낭송 전국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마르 비뇰레라는 괴벽스러운 작가를 만난 적이 .. 더보기
[시배달] 김혜순, 「잘 익은 사과 」 (낭송 문지현) 크고 잘 익은 햇사과를 사각사각 깎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과에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천 년 동안 아가인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둥글게 둥글게 껍질 깎이는 자리가 자전거타고 상쾌하게 지나가는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 같지 않나요? 시는 말로 되어 있고, 그 말은 사물을 닮은 가짜이지만, 시인의 욕망은 독자에게 ‘사과’라는 말이 아니라 진짜 사과를 주는 것. 그러므로 이 시를 즐기려면 사과라는 '말'을 버리고, 눈과 코와 귀의 감각을 최대한 확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둥글게 깎이는 작은 사과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로 바뀌는 마술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