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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감동/문화나눔 후기

[후기] 시가 흐르는 마을 공동체, 통영시 사량면 양지리 능양마을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시가 흐르는 마을 공동체



- 장영석
(통영시 사량면 양지리 능양마을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강사)




나는 <극단 벅수골> 창단멤버로 30년 연극작업과 통영연극협회 고문으로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예술문화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극단 벅수골>이 신청한 사량도 양지리 마을이 선정되어 9월부터 강사로 매주 마다 사량면 양지리 마을을 찾아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문학의 소질도 소질이지만 나이가 지긋해서 섬마을 어른들하고 잘 어울리고 잘 소통 될 것이라 하여 주강사로 선정되었다 한다. 연극작업 30년 동안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인정되었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촌놈이 나이가 보배라 했던가. 아무튼 신나는 일이다. 주위 친구들은 정년으로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는데 나는 새로운 일에 매진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량도(蛇梁島)는 통영시 서편에 자리한 섬으로 상도(上島)와 하도(下島)가 나란히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국으로 1.5km 거리에 있는 상도와 하도 사이의 바다는 물살이 제법 거칠다. 사량도는 섬이 꼭 긴 뱀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기암괴석으로 덮여 있는 섬의 해안 돌출부가 하나같이 뱀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섬에 뱀이 많다고 한다. 

 
 


매주, 어르신들과 문학으로 만나는 사량 하도 양지리는 하루에 한번 오후3시에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가 출발하기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늘 마음이 바쁘다. 이 배를 놓치면 도산(가오치)터미널에서 상도 금평을 거쳐 덕동에서 마을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사량 섬에 게시는 양지교회 목사님이다. 악수를 하고 목사들의 모임이 있어서 마치고 섬으로 들어간다며 함께 배에 올랐다. 지난주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설명회 때 30여명의 어른신들 중 눈빛을 반짝이며 열심히 경청한 분이다. 10여년 사량 양지마을에서 목회하면서 마을공동체가 화목하기를 기도했는데 때마침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사량 섬 양지리 마을이 선정되어 10여 년간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셨다한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왠지 부끄러워 미소로 답하며 1시간 남짓 마을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사님과는 저녁에 마을 경로당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마을이장을 찾아 인사하고 오늘 모임 방송을 부탁드렸다. 
 
마을을 돌아보던 중 마을입구에 잔디와 나무그늘로 잘 가꾼 쉼터에 할머니들이 앉아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나는 쉼터 벤치에 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 듣고 있는데 통영(뭍)에서 ‘한산대첩 축제’ 때 띄어 올린 풍선이 바람에 날려 와, 마늘밭에 내려왔는데 풍선 색깔이 너무 고와 쑤씨골에 걸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 바람이 빠져 쭈굴쭈굴 해져 할머니 얼굴처럼 되었다고 한다. 재미가 있어 메모지를 꺼내 적어두었다. 
 
오늘 모임을 위해 마을 경로당 청소를 마치니 어느덧 어둠이 깔리어 불을 밝히고, 구판장에 간식 준비를 부탁하여 모임 준비는 마침 셈이다. 기다리는 동안 어른들이 좋아하는 관광차 풍의 대중가요를 틀어놓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한분 두분 불편한 몸을 이끌며 경로당 이층계단을 오른다. 
 
불편한 어른들보다 건강한 어른들이 항상 늦게 온다. 물론 농사일 고기잡이로 생업이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해는 하지만 모임 때마다 늘 그러니 기분은 별로다 그래도 표정관리에 노력한다. 우선 한글을 모르는 어른들이 있다기에 한글판을 부쳐놓고 가,나,다,라,마,바,사···· 짚어가며 따라하라고 한다. 안경을 안가지고 왔다는 둥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따라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은 표정들이고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분위기를 바꾸어 해거름 쉼터에서 들었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생활 속에 있는 이야기, 기쁨과 눈물어린 사연들 그런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글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무슨 글을 만든다고, 하며 자신 없는 웃음에 나를 실없는 사람처럼 보는 눈빛이다. ‘자자 웃지만 말고 한 번 해보자’며 독려하여 다시금 그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백보드 판에 적었다. 그리고 문장을 정리하고 읽어드리며 알아듣지 못하시어도 열심히 설명하니 시가 되었다.  
 


바람에 실려 온 풍선

 
올 한산대첩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텔레비전으로 봐도 그런대로 재미있고 자랑스러웠다.
 
섬(양지리)에 사니까 뭍(통영)의 행사와 축제는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사는 게 섬사람들의 삶이 아니던가,
자식이 통영공직에 있으니 구경하고 가라해도 안 갔다.
 
팔순의 나이지만 마늘밭도 가꾸어야하고 섬에 살아도 할 일도 많고
자식들 성가시게 하기 싫어 텔레비전을 봤다.
바람이 은근히 늙은이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산대첩이 끝날 무렵 축제 때에 띄워 올린
풍선 여섯 개를 집 위 마늘밭에 내려놓았다.
 
얼마나 예쁜지
늙은이의 마음도 풍선 따라 부풀어 올랐다.
호박보다 더 크고 반짝이는 빛이 고와 풍선을
오래 오래 보고 싶어 쑤씨골에 걸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
바람이 빠져 쭈꿀 쭈굴 해져 버렸다.
 
조것이 나를 닮았네. 
 
- 김 공 순 
  
 



다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래 맞아, 그때 풍선이 날아왔지 바람이 빠져 할매 얼굴처럼 쭈꿀 방탱이가 되었지. 하고 웃음바다가 되고 너도나도 이야기 봇 따리를 풀어낸다. 
 
‘묘 자리를 쓰는데 하얀 백학이 날아간 차씨 문중의 전설’, ‘일제강점기시절 공출당하지 않기 위해 17살 때 섬으로 시집와서 팔순을 살고 있는 사연’, ‘등잔불에 선을 보고 결혼으로 성사된 마마자국의 곰보할머니 이야기’, ‘수년간 숙원사업인 상도 하도 연도교가 아직도 놓아지지 않는 불만’, ‘주색잡기로 몇 번이나 딴 살림 차리고 돌아간 영감이 밉지만 그립다는 할머니’, ‘척추판 고정으로 19년 병수발로 효부상 받은 이야기’ 등 너무나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사연들이 수 없이 많을 것 같아 이야기들을 적어오라고 숙제를 주었다.
모임 때 마다 가져온 달력 뒷장에 비뚤거리는 글씨, 그래도 뜻을 알아 볼 수 있기에 다시 백보드에 써가며 함께 문장을 만들어 갔다. 목사님을 비롯한 몇몇 어른들은 수정하지 않아도 좋은 글도 많았고, 아예 글을 모르는 어른들은 구설로 정리 녹음하여 연습을 통해 글을 익히도록 훈련했다.
 
적지 않은 시가 만들어 지니 모임은 풍성해져 갔다.
시낭송과 더불어 마을노래도 만들고 풍물강사의 장단 합창연습, 마을의 전설이 되어버린 ‘십오야 계모임 하던 날 고성방가로 경찰지서에 끌려간 훈방조치 사건’을 극화(콩트)하여 연출 선생의 지도와 연습이 있는 날이면 웃음바다가 되어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의 제목처럼 섬 마을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25편의 시는 마을포구에 낡고 녹슬어 방치된 20여개의 냉동고를 무지개 색으로 칠하여 시화를 만들어 상설전시장으로 변모시키고 간간히 찾아오는 마을 손님, 낚시꾼들에게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제공하여 마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윽고 종합발표회! 경치가 좋고 바다가 보이는 야외에 발표장을 마련했으나 겨울바람으로 인해 실내 마을회관으로 서둘러 옮겨야만 했다.

많은 내빈들과 이웃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모두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평소 연습한데로 어르신들의 시낭송은 또박 또박 이어지고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감동 속에 ‘십오야 달밤의 추억’의 촌극은 예상치 못한 어르신 배우들의 애드리브에 폭소와 배꼽을 잡고 마을노래합창으로 박수갈채와 함께 막을 내렸다.   
 
  
 
마을에서 준비한 떡국잔치가 이어지고 너도나도 해내었나는 뿌듯한 자부심과 상기된 얼굴들, 서울서 내려온 한국예술문화교육진흥원장님의 덕담과 더불어 소주 잔 기울이며 열기가 익어가고 해가 질 무렵 배시간이 촉박하여 마을을 떠나 왔다. 


해가 바뀌어 3월 이른 봄볕이 내려 쪼이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양지리 마을을 찾았다. 내심 반가운 얼굴로 반겨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마을 어른들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이유인즉, 종합발표가 끝나고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어 섬마을이 알려졌는데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고 마을에 별 소득도 없고 <극단 벅수골> 명성 날리는데 들러리 선 꼴이 되었다고 불만을 안고 있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시범사업이라 아직은 모르지만 올해도 재선정될 것 같다고 해오던 작업과 모임을 계속 이어가자고 설명했다. 목사님을 중심으로 교회 분들은 취지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인 반면 마을이장을 비롯한 몇 분들은 부정적이고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4월에는 홈스테이지 사업에 전국시인들 모임 <좋은 세상> 30여명이 참가하여 ‘내가 사랑하는 섬’ 시집출판기념회를 겸하여 양지리 능양 마을 시 짓는 어른들과 함께 담소하며 밤을 지새울 때 이날 함께 참여한 오세영(서울대학교 교수) 박사는 마을 어른들의 시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다 그리고 많이 배우고 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다음날 일행들은 산길을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마을 분들과 시 상을 떠올리며 점점이 떠있는 섬의 풍경들을 한눈에 가득히 담고 갔다.   

 
바람 불고, 안개가 짙은 날이면 섬에 갇혀 며칠을 보내며 섬사람들의 불편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모임을 간간히 해오던 중 6월부터 재선정 되어 본격적인 모임이 시작되었고 통영시에서 개최하는 ‘통영연극예술축제’(2010,7,20)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초청을 받아 다시 시 짓기와 낭송, 콩트 연습에 열중하며 참가했다. 
  
 
 



축제 당일 배를 타는 어른들의 모습은 이웃의 결혼식장이라도 가는 냥, 곱게들 차려 입고 들뜨고 기쁜 마음들은 소풍가는 아이들을 닳아 있었다.

 
통영, 강구 안 바다보이는 문화마당 야외무대, 조명불빛 속에 어른들 애환의 시가 밤바다를 애잔하게 수 놓았고, 관중석에는 몰래 손수건을 훔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고, 노래와 콩트는 관중들의 환호와 감동, 기립박수 속에 가족들이 준비한 꽃 다발세례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위해 멀리 서울에서 참석한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님의 인사말을 통하여 전국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사량 양지리 어른들이 1등 했다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통영시민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8월에는 뜨거운 날씨 탓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을을 한데 모우기 위해 방학을 선언하고 냉각기를 가졌다. 그리고 9월부터 다시 공동체모임을 시작하여 모임 대표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여 마을의 화합을 다지는 가운데 집 담벼락에 자작시를 시화하여 아연판에 새겨 부착하여 생활문화공동체를 통하여 조금씩 마을이 변모해 감을 실감케 했다.
 
그간 발표회와 축제에 참석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언론 매체에서 책으로 엮어 발간하면 좋을 것 같다하여 올 한 해 동안 만든 시(詩)를 모아서 29분의 시 43편을 역어 시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애환이 녹아나는 시와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얼굴을 한 면씩 장식하고 지난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문화교육박람회’에서 어르신들의 시를 영문으로 전시, 외국인들의 감동에 힘입어 다문화, 글로벌(global)시대에 맞추어 영문번역분도 수록하여 외국인들에게도 섬의 사연을 알리고 찾는 계기가 되도록 편집 하였다. 
 
10월30일 출판기념회를 겸한 ‘아름다운 詩가 흐르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 대전의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와 품앗이 공연도 곁들이며 관내 기관장 여러 내빈들 그리고 떠나있는 향인들 가족들을 초대하여 다시 한 번 감동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통영은 유인도, 무인도를 포함해서 250여개의 섬이 있지만 일부 큰 섬이나 유명한 섬을 제외하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버려진 듯 홀로 바다와 싸우고 있는 섬들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섬들은 어쩌면 우리 이웃과 닮았다.
 
그런 아프고 아름다운 섬을 노래하는 소탈한 작업들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하고 사량 양지리 마을 어르신들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며 많은 사랑을 부탁하고 싶다. 



생활문화공동체는 21세기 우리사회 새 마음, 새 문화운동으로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읍면동 단위에서 함께 만나고, 교류하며 지역 고유의 특색에 맞는 공동체 형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청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농산어촌, 임대아파트 단지 등 문화소외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자생적인 문화예술 활동 및 문화공동체 조성을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 혹은 공연이 되어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우리 동네가 무대가 되는 프로그램, 이웃들이 사랑방에 모여 시를 만들고 낭독하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홈페이지
http://www.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