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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감동/나눔 선정/당선작

[수기공모 선정작] 내 안에 너(예술가) 있다


[수기공모 선정작]

내 안에 너(예술가) 있다



노수미



저는 올해 1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왔습니다. 발단은 남편의 말 한마디로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어느날 제주도로 이사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서울 생활을 힘들어했습니다. 3시간이 넘는 출퇴근 지하철의 악몽, 지문을 찍어 출퇴근 확인을 하는 빡빡한 회사생활, 서울에서 15년을 살았지만 내 집 마련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이 남편을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탁 트인 바다 옆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우리 부부는 그냥 미친 척 하고 제주로 이사를 와버렸습니다.


저는 임신 6개월의 상태였기 때문에 직장 구하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의 어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_치유적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죠. 아는 사 하나없는 제주에서 사람도 사귈겸해서 저는 그 프로그램에 등록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줄리아 카메론'이라는 감독의 책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매일 내 안의 예술가를 깨워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내 안의 예술가라니요. 제가 학창 시절 가장 못했던 것이 바로 음악, 미술이었는데 말이죠.
아직도 미술선생님이 제 그림을 가리키며 최하 점수 그룹으로 선정했던 때의 충격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걸요. 그러나 그 책은 누구나 예술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6명의 참가자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생각나는 것들을 노트에 주저리 주저리 적어나갔습니다. 밤새 나를 힘들게 했던 악몽에 대해서도 적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심정을 삐뚤거리는 글씨로 갈겨나가기도 했구요, 남편 아침밥 차려주기 싫다는 말을 노트 가득 크게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조금씩 해나가면서 글쓰기 멘토가 주는 과제들을 한가지 씩 수행했지요. 미술관에 다녀와서 감상문 쓰기, 사진첩을 뒤져 나의 성장 앨범 만들어보기, 어머니를 주제로 시를 한편 써보기, 만다라를 만들어 색칠해보기, 가장 잘 하는 요리를 한가지씩 만들어 와서 나눠먹기, 나만의 명함 만들기 등등 말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진행하면서 저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득, 몇년 전 KBS 열린음악회에서 세계적인 오카리나 연주자가 앵콜곡으로 연주하였던 우리 가곡 ‘목련화’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TV에서 들렸던 오카리나 소리. 아! 그 소리는 내 귀에 미세한 실금을 내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오카리나를 배워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제 꿈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답니다.


늘 제 안에서 절 가두어두려고 하는 악마가 그때도 난동을 부리더군요. “이봐! 넌 음악에 재능이 없어. 넌 음치에 박치잖아. 이번에도 돈 낭비만 하는거야.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해!” 결국 저의 자신감은 또다시 사라지고 한 순간 음악에 반했던 마음마저 닫아버렸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큰 맘 먹고 오카리나를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강좌생들에게 제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다들 크게 기뻐해주더군요. 제 숨겨진 재능이 이제 나타나는 거라고 하면서요.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가십이나 찾아다니며 읽던 제가 이제 열중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습니다.


이곳저곳에 문의해 본 결과, 제주도에 오카리나를 만드는 공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만삭의 몸을 하고 그곳을 방문하여 여러 오카리나 중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을 하나 안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소리...도저히 음악이라 생각되지 않는 ‘삐익삑’하는 소리들이 시도 없이 새어나왔습니다. 물론 제가 만들어내는 음악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리코더와 단소를 마스터했으니 오카리나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잘 늘지 않았습니다. 호흡이 짧아서 쉬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쉬어가니 음악이 스타카토가 붙은 것처럼 뚝뚝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순가요? 중요한 것은 제가 오카리나를 불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작은 변화를 통해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마치 남들의 ‘위시리스트’가 저에게는 ‘드림리스트’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들을 쭉 적어봤더니 노트 한 페이지 가득 채워지더군요.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는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집에서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 때우기만 했었는데 말이죠. 그 후로 저는 미술관에서 지원하는 미술 강좌를 등록하여 칠보 공예와 토우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또, 종이접기와 클레이 공예도 배워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엄마표 액자를 아기에게 만들어줬습니다. 

지금도 저는 매일 매일 제 안의 예술가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낍니다. 매일 아침 샐러드를 만들 때도 예전에는 드레싱을 마구마구 아무렇게나 뿌려댔으나, 요즘은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뿌리거나 ‘물음표나 느낌표’ 모양으로 뿌립니다. 아기가 잠을 자고 있을 때면 스케치북을 꺼내 아기에게 들려줄 동화를 직접 창작하고 그림도 첨가하여 그림동화책도 만듭니다. 또 아이에게 바치는 노래를 직접 작곡하느라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누르며 흥얼거리는 소리에 맞는 음을 찾아내느라 바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내 안의 예술가를 깨우는 활동은 제 삶에 더할 나위없는 충만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늘상 “나는 재능이 없어. 아~ 신은 정말 불공평해.”라고 입에 달고 살았던 제가 ‘동화 작가’를 꿈꾸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삽화도 제가 직접 그리구요. 동화내용을동요로도 만들어 누구나 쉽게 흥얼거리는 ‘아기 염소’같은 국민 동요를만들겠다는 소망도 생겼습니다. 하루하루 할 일이 없어 오늘은 남편 올 때까지 뭐하고 보내나 싶던 제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게 꿈만 같네요.


여러분~ 올 가을에는 내 안의 예술가를 깨워보세요.


당신은 ‘아티스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