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배달] 권여선, 「사랑을 믿다」 중에서 (낭송 김신용, 박경미, 금빛나)
무심히 살아가다 문득 발목 잡히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별 같은 큰일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는 일이 하염없어지는 때. 그럴 때, 저는 책 속으로 도피하거나 주방으로 나가게 되더군요. 설탕을 듬뿍 넣고 과일 잼을 만들거나, 유자나 모과 따위를 잘게 썰어서 차를 담그거나. 그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동동 떴던 마음에 발이 생겨서 다시 땅을 딛게 되더군요. 실연당한 친구를, 일 년 전에 똑같은 일을 겪은 그녀가 위로해주고 있어요. ‘보잘것없는 것’에 집중하는 건 어쩌면, 마음을 통째로 삼키려 드는 아픔에 작은 물꼬를 틔워주는 일인 듯해요. 지금은 고통에 절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소설 속 친구도, 언젠가는 그걸 알게 되겠지요. -2011.01.06 문학집배원 이혜경 권여선, 「사랑을 믿다」 중에서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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