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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문화나누미] 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봄햇살 같은 소설가 이혜경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문학나눔] 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봄햇살 같은 소설가 이혜경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날아보지 않겠느냐고 날개를 퍼덕이던 새는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이었다. 다시 보면 새였다. 날아오르는 새.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 그 틈새기에 끼인 채, 그는 간판의 도형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이혜경, 지난 여름, 지독히도 힘든 오춘기를 겪을 때 무심코 책장에서 뽑아 든 책에서 이 구절을 만납니다. 이미 수업시간에 분석 레포트를 쓰느라 여러 번 읽었었는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버린 틈새에 갇혀 이도저도 못 가는 것은 나 또한 똑같았기에 참 많이 울었고 웃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틈새가 있기에 찾아 드는 것. 날아드는 새와 새싹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희망이라 부르는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죠. 그 .. 더보기
[시배달] 신덕룡, 「만월」 (낭송 박경찬) 햇빛의 가닥가닥 줄기에서 “팔천 가닥의 면발”을 이끌어내는 힘은 오랜 기억 속의 배고픔이겠죠. 어릴 적 시인의 사남매는 이미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한 가닥씩 물고 쩝쩝거리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넘치는 양념 때문에 빛깔과 냄새가 화려하고 요란해서, 요즘 음식은 맛있어 보이지만 금방 질리죠. 밀려드는 음식은 전혀 배고플 틈을 주지 않아 마음까지 비만으로 만들죠. 추억 속의 배고픔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일 것입니다. 가난을 악착같이 기워 추위와 배고픔을 막으려던 어머니의 기억까지 더해져 더욱 그리워지는 별미. 아무리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닌들 이제 어디서 이 별미를 맛볼 수 있을까요? - 2010.12.20 문학집배원 김기택 신덕룡, 「만월」 밀.. 더보기
[문장배달] 최진영,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낭송 이문하)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새의 선물』 주인공이 당돌하게 선언한 지 어언 15년, 한 아이가 또다시 선언하네요.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노라고. 조숙한 아이들의 선언은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단숨에 괴물이 되어버린 아빠와 모진 매 앞에 속수무책인 엄마. 반복되는 폭력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던 아이는 그만 부모가 가짜라고 믿기로 했어요. 진짜 부모라면 자기 아이의 아픔을 그토록 모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밤이면 환히 불 켠 집들. 멀쩡해 보이는 집 어디에선가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어린 영혼은 위기 느낀 쥐며느리처럼 오그라들고 있겠죠. ‘토끼 같은 사람’을 단숨에 괴물로 변하게 하는 무엇, 문득 마음에 한기가 드네요. - .. 더보기
[시배달]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낭송 박후기)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이 감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잦고 바람이 강해도 오히려 가지들이 제멋대로 까불고 흔들리면서 바람과 함께 놀고 있네요. 연약한 실가지가 강한 댓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히려 댓바람더러 더 세게 불라고 놀리면서 바람을 즐기고 있네요. 우듬지와 실뿌리 사이 ‘땅심’이 드나드는 이 놀랍고 자유로운 소통의 세계. 땅의 질서와 하늘의 조화가 한 그루 나무속에 완벽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를 축소시킨다면 바로 이 나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실뿌리는 땅의 중심에 닿아 있고 우듬지는 하늘의 무한한 넓이로 뻗어 있는 세계. 그래서 이 세상 생명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가 제 ‘깜냥껏’ 삶을 누리는 세계. - 2010.12.13 문학집배원 김기택.. 더보기
[문장배달] 찰스 디킨즈, 「올리버 트위스트」 중에서 (낭송 김세동, 홍서준, 박후기) 거칠 것 없어 보이고 듬직하던 한 선배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선배에게도 피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상대방이 뻔히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그것도 큰소리로 말하는 어떤 이의 ‘결정적 장면’을 목격한 뒤에 그 사람이 보이면 피해 간다더군요. 그토록 듬직한 선배조차 감당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어요. 참새가슴을 가진 사람들이야, 감당 안 되는 사람을 피하는 게 당연한 거겠지요. 올리버 트위스트에게 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마구 퍼붓던 노어가, 밟히다 못해 꿈틀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고발하는 대목이에요. 거짓은 참 힘이 세지요. 거짓의 기세가 거세어진 세상, 그에 휘둘리지 않고 맞설 힘이 절실해지는 요즘이에요. -2010.12.09 문학집배원 이혜.. 더보기
[시배달] 박주택, 「국경」 (낭송 박주택) 잠그면 바로 벽이 되는 문.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는 문. 드나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단하기 위해 있는 문. 사람들은 바로 그 문을 닮았군요. 그래서 벽을 맞댄 이웃과의 사이가 ‘국경’만큼 멀어지게 이르렀습니다. 문이 벽이 되면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기도 하겠지만 문 안에 있는 사람도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아이디 속에서 익명이 되어 병적으로 소리치는 것도 제 문에 제가 갇혀 숨이 막히니까 마음껏 숨 쉬고 싶어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람의 마음은 그 문처럼 생겼을 겁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김영승, 「반성 743」) - 2010.12.06 문학집배원 김기택 박주택.. 더보기
[문장배달]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낭송 김세동, 천정하, 홍서준) 제 상처가 너무 아파, 자기의 상처만 들여다보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확대경이 눈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자기의 상처만 크게 보이는 그런 시기. 아들이 자신에게 매몰되는 걸 구해내기 위해 어머니는 과감하게 엉덩이를 드러내네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부부가 즐겨 찾던 식당주인에겐 이런 기억이 있었네요. 일상에서 익히 보아온 일과 그 경계를 살짝 넘어선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한 이 소설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 가진 것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감히 꿈꾸었는데, 이런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면, 한번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2010.12.02 문학집배원 김기택 윤성희, 「구경꾼들」 중에서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 더보기
[시배달] 조은, 「등 뒤」 (낭송 이영주) 이렇게 슬픔이 잘 익은 시, 너무 잘 익어서 다디단 즙이 확 터져 나올 것 같은 시, 온몸으로 단맛이 핏줄을 따라 짜릿하게 스며들 것만 같은 시를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모두 막혀 있어서, 제 마음 말고는 숨 막히는 슬픔을 처리할 길이 없을 때, 소월 같은 시인은 슬픔을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키웠지요. 끝내 터뜨리지는 않고 터지기 직전까지 탱탱하게 키우기만 했지요. 감염력이 큰 그 자학적인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현실의 고통을 즐기려고 했지요.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커다란 슬픔. ‘등 뒤’로 느껴도 그 격렬함이 온몸을 뒤흔드는 슬픔.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맑아지는 환희의 순간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2010.11.29 문학집배원 김기택 조은, 「등 뒤」 등 뒤가.. 더보기
[문장배달] 막스 피카르트, 「동물과 침묵」 중에서 (낭송 정인겸) 초등학교 때, 저희 반엔 반벙어리인 여자애가 있었어요. 동그스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이 소처럼 순해 보이는 아이였지요. 그애가 입을 열면, 어버버버... 채 말이 되지 못한 말이 덧없이 흩어졌어요. 그 애는 말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요. 그럴 때 그 아이의 눈에 스치던 무엇. 지금 생각하면, 말로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어린 동물의 눈빛이 아니었나 싶어요.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라는 문장을 첫머리에 담고 있는 이 책은 젊은 날 가뜩이나 할 말 없던 제 입을 더 무겁게 해주었죠. 침묵이 희귀해진 시대, 침묵에 대해 말하는 문장들을 읽다 문득 밖을 내다보니 나무들. 살랑이던 잎 다 버리고 가지만 남은 나무는 묵언 정진에 든 수행자 같군요. - 2010.11.25 문학집배원 이.. 더보기
[시배달] 윤의섭, 「바람의 냄새」 (낭송 노계현) 몸의 기억력은 머리의 기억력보다 정확하고 섬세하죠. 건망증은 기억을 갉아먹어도 몸은 결코 제가 겪은 일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머리보다는 몸의 감각으로 사유하려 하지요. 이 시인은 냄새의 기억으로, 한때 이 땅을 살다간 수많은 삶과 죽음의 비밀을 바람 속에서 찾아내려 합니다. 그 호기심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 코를 들이대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시간의 기억을 넘기도 하고, “전혀 가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처럼 공간의 기억을 넘기도 합니다. 그 후각은 “먼 혹성에 천 년 전 피었던 풀꽃 향”과 같이 우주적이며, 그 욕망은 모든 삶이 시작된 ‘발원지’를 찾아내려는 데까지 닿아있습니다. 이 코의 상상력은 수십, 수백만 년 이 땅을 살다간 선조들.. 더보기